유영선<본사 상임이사>

기대하지 않고 갔던 행사였다.

평일 낮 2시. 그것도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월요일이라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른 일들을 제치고 청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을 찾았다. 시작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공연장 풍경은 부산했다. 로비 한쪽에선 기타줄을 고르느라 열중인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보이고, 한쪽에선 불편한 몸으로 느릿느릿 행사장에 들어서는 장애인 청소년들이 보이고, 무대 앞에선 꽃단장한 아이들이 해맑은 웃음을 날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시작 전부터 공연장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2013 푸른예술제’-. 충북예술제 일환으로 열린 행사다.

지난 10월28일부터 11월11일까지 청주 일원에서 27개의 행사가 펼쳐진 충북예술제는 거리행진부터 오페라 공연까지 화제가 된 행사가 많지만, 그 가운데 푸른 축제는 눈길을 끌지 않은 작은 행사였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수는 출연자를 포함해서 고작 100여명 남짓. 그러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뜬 관객들은 없었다. 모두 최고의 박수를 보냈고, 유쾌하게 웃었으며, 가슴이 따뜻한 감동을 얻었다.

‘푸른예술제’는 충북예술제 집행부가 어른들만을 위한 예술제에서 외연을 넓혀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공연무대를 마련해 주자는 취지에서 준비됐다. 평소 무대공연을 할 기회가 없는 복지시설의 예능팀이나 복지관의 청소년 동아리 등 모두 9개 팀이 추천을 받아 출연했다.

행사의 취지만큼이나 그날 그곳을 찾은 어른 관객들의 태도도 특별했다. 소위 공연장이나 행사장에서 VIP석이나 로얄석으로 지정되는 앞자리에는 출연진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어른관객들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 이전에 좋은 공연장에 왔다는 것부터가 기분이 좋고 흥분을 한 것 같았다.

청주맹학교의 여학생이 맨 먼저 무대에 올랐다. 선생님 손을 잡고 무대에 올라 관중석이 어느 쪽인지 피아노를 더듬거리며 확인한 뒤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며 순간 울컥했다. 관객들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분한 자세로 맑은 음률을 선사하는 학생에게 사람들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냈다.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된 난타동아리와 댄스팀의 공연은 실수가 더 재미있었던 무대였다.

조명등이 환하게 켜진 무대에 오른 것이 흥분이 되고 관객들의 시선이 쑥스러웠는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자기 자리를 못찾아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밉지 않았다.

지도교사가 앞에서 아무리 시범동작을 해도 관객에게 시선을 뺏겨 동작을 놓치고 뒤늦게 혼자 동작을 하는 출연자들 때문에 공연장은 연신 웃음바다가 됐다.

발레복 망사치마, 긴머리 가발에 보라색 꽃리본을 머리에 단 댄스팀원은 가발과 리본이 신경이 쓰였는지 머리만 붙들고 있더니 갑자기 답답했던지 펄쩍펄쩍 뛰어올라 박수를 받았고, 행복한 종소리팀이 핸드벨로 연주를 할 때는 한 명이라도 박자를 놓칠까봐 전체의 관객들이 몸을 앞으로 하고 한 마음이 되어 감상을 하기도 했다.

그날 무대에는 멋진 드럼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주최측이 출연자들을 위해 350만원이나 들여 대여해 온 것이라고 했다. 숭덕재활원 원생과 용암복지관밴드의 드러머가 그 드럼을 쳤는데 처음 앉아본 고급 드럼(?)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 바라만 봐도 흐뭇하게 느껴졌다.

 


“예술은 감동이다, 감동은 힘이다”가 이번 충북예술제의 주제다. 많은 예술행사를 통해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행사가운데 전문예술인은 커녕 아마추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소외계층의 청소년들이 펼친 푸른예술제가 준 감동은 특별했다.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예술의 수준과 가치만이 아닌, 예술을 대하는 자세와 진정성,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세에서 진정한 감동은 오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감동은 힘이 될 수 있는 것임을 푸른예술제를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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