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가 모처럼 만나 경색 정국을 풀 묘수를 찾아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25일 회동은 단단히 꼬여 있는 정국을 웬만한 카드로는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현실적 한계를 새삼 실감케 했다.
일단 겉으로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 도입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와 더불어 특검 도입이 동시에 수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새누리당은 특검은 도입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야 대표의 회동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여전히 시계 제로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여야가 특검 문제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데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를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가면서 정국 정상화는 당분간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미사의 취지가 사제의 본분을 망각한 도를 넘은 처사로 비판을 받고 있고,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취지의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은 여권과 보수단체의 공세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원로신부는 어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북한 짓인지 미국 짓인지 모른다. 북한에 의한 공격이 아닐 확률이 많다"고 거듭 밝혔다.
일반 신도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사제가 정치적 편향성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정면 위반했다는 비판이 종교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는 어제 강론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 공방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정가에 암운을 드리우는 대목이다.
여권에선 일부 사제들의 정치 행보를 겨냥한 날선 비판을 일제히 쏟아낸 반면 민주당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지만 일부 의원이 종교인들이 나서게 된 근본 배경은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이라고 대여공세를 펴고 있다.
전반적인 기류 자체가 정기국회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정국이 조기에 정상화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행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수그러들지 않고 확대 재생산될 경우 우리 사회가 백해무익한 이념 논쟁에 빨려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일부 사제들은 염 대주교의 강론을 숙고해 자숙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도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대선이 끝난 지 11개월이 지났는데도 대선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국민 대부분의 관심은 이보다는 민생 문제에 쏠려 있다는 점을 여야 지도부가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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