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 판결로 지난 연말 예산안 정국을 거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대선 불법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문제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1심 재판결과가 정국을 또다시 회오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야는 10일 특검 도입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야당은 정권 차원에서 무죄 만들기가 진행됐다면서 의원총회를 통해 당내 중지를 모아 특검을 관철시킬 묘책을 강구하는 반면 여당은 사법부가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야권의 대선불복 공작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야당을 공격해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특검 요구와 더불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물론 교학사 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제출하고 대여 전면전에 나섰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김용판 무조 판결은 특검의 필요성을 입증한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야권이 공동으로 발의한 특검 법안 상정과 표결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처럼 여야가 또 정쟁으로 치닫게 되면 2월 임시국회도 허송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산적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돼 민생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지난주 설 연휴가 끝난 뒤 여야 지도부가 정치 개혁을 다시 외치고 나선 것은 지난 한 해를 정쟁으로 허송한 데 대한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본다. 반성문 써내듯 다짐한 정치개혁과 혁신은 정치권에 싸늘한 시중의 여론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민생을 보살피는데 주력해 달라는 민심을 받들어 2월 국회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쏟아 낸 것도 채 일주일이 안 됐다. 지난 대선 때 공약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보니 국민들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 앞에서 금세 거친 공방으로 회귀하는 여야의 행태는 국민에게 또 한 번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인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포장을 잘한다 하더라도 새 정치는 요원하다.
김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 판결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쟁의 수위를 높이는 것부터 자제해야 한다. 1심 판결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재판의 의미를 윤색해서도 안 되거니와 재판부를 겨냥해 비난을 쏟아 내거나 압력을 넣는 듯한 일도 지양해야 마땅하다. 사법부의 고유 권한인 양형에 입법부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1심 판결이 나온 후 여야가 보여준 태도는 사법부를 상대로 편 가르기를 하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사법권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시비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이 흔들리지 않도록 상급심의 판단을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민생현안이 산적한 국회를 볼모로 잡겠다거나 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 공세를 남발하는 것도 지금껏 익히 보아온 구태정치의 단면들이다.
6·4 지방선거가 임박하면서 여야의 정쟁은 갈수록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여든 야든 거친 풍랑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죽기살기 식으로 선거의 승부에 집착하는 이유라고 본다. 새해 들어 기자회견,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등을 통해 경쟁적으로 정치혁신안을 쏟아낸 여야 정치권이 또다시 초심을 잃고 정쟁으로 일관하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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