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의 시에는 비릿한 바다내음이 묻어 있다. 음악가의 시는 노래하듯 리듬을 탄다.

최근 선장, 음악가, 국세공무원이라는 이채로운 이력을 지닌 시인들이 잇따라 시집을 발간했다.

●바다, 짐승이 우글우글하다

이윤길(사진)씨는 시인이기에 앞서 선장이다. 주문진 수산고를 졸업한 이후 그는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원양항해를 해왔다. 매년 바다 위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는 그는 한국 땅 위에서 지내는 두 계절 동안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다. 한국해양문학상 대상(해양시),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해양소설) 등 해양문학과 관련한 걸출한 상들을 두루 수상했으며 지난 2012년에는 시집 ‘파도공화국’이 부산문화재단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는 대부분 바다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체험을 재료로 삼은 시에는 현장감이 넘친다. 하나의 풍경도, 동경의 대상도 아닌 날 것 그대로인 그의 바다는 거칠다. 이 시인은 숙련된 솜씨로 잘 다듬어낸 바다를 독자 앞에 한 상 차려 내놓는다.

구모룡 문학평론가(한국해양대 교수)는 발문을 통해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자신의 해양 경험의 세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열정과 의지가 빚어낸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 시인은 “파도 스친 상처로 가슴이 꽉 메어 올 적, 눈물이 핑 괴일 저 어느 바람 센 바다에서 우리의 아버지, 아들, 애인의 사랑과 꿈 등 그 푸른 삶을, 현창 밖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시인은 강원도립대 해양산업학과,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7년 ‘계간문예’ 영목신인상(시)을 수상하며 등단, 해양시집 ‘진화하지 못한 물고기’, 해양중편수상집 ‘쇄빙항해’ 등을 펴냈다.

도서출판 전망, 109쪽, 8000원.

●안동 까치밥나무

안동대 음악과 외래교수인 이성진(사진) 시인이 최근 시집 ‘안동 까치밥나무’를 펴냈다.

표제시 ‘안동 까치밥나무’는 옛 사랑을 추억하며 써낸 시. ‘까치밥나무’의 꽃말 ‘숨겨진 사랑’처럼 가슴 한구석에 감춰져왔던 풋사랑의 기억이 시에 묻어난다.

이 시인은 “안동하면 먼저 물빛 좋은 호수와 댐 그리고 경치 좋은 산이 떠오른다”며 “아름다운 풍경과 그리운 사람이 살던 곳, 같은 하늘 아래 우연이 필연이 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서 잡고 싶고 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서글퍼지고 눈물이 난다”는 이 시인. 책에 실린 많은 시에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해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려 하는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시인 자신에 대한 위로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이번 시집이 독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는 우리네 삶 속에 녹아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란다”며 “바쁜 일상 속에서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소중했던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친 영혼에 한조각 빛줄기 같은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2009년 ‘문예춘추’로 등단했으며, 국립안동대 음악과와 동 대학원(작곡 전공), 이태리 로마 A. I. ART 아카데미 지휘과를 졸업했다. 현재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여행’, ‘그대 사랑하라’ 등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북랩, 104쪽, 9000원.

●꽃불

국세공무원으로 35년을 근무한 박정원(사진) 시인이 시집 ‘꽃불’을 펴냈다.

그는 ‘물의 시인’으로 불린다. 2007년에 출간한 시집 ‘고드름’의 추천사에서 정호승 시인이 “박정원은 물의 시인이다”라고 정의하고, ‘뼈 없는 뼈(2010)’를 통해 황상순 시인이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처마에서 듣는 낙숫물… 등, 온갖 물소리가 들린다”고 평한 이후부터다.

이번 시집에서도 ‘물의 시인’은 ‘눈물’로 그 영역을 구체화시킨 시들을 선보인다. 책의 전반에는 ‘인간의 눈(目)’물·‘자연의 눈(雪)’물과 관련된 다양한 정서들이 흐른다. ‘내가 만든 감옥에 물을 붓’는다는 ‘물거울’이라는 시가 그렇고, ‘타이레놀 같은 눈송이들/눈물 집 몇 채라도 엮어내겠다’는 ‘눈밭에 갇히다’도 그렇다. 눈물은 시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된다.

박 시인은 “어렸을 적부터 연주해 온 피아노를 팔아치운 건 내 영혼을 내동댕이친 것과 다름없는 일로 남김없이 다 주고 떠난 피아노의 삶이 자꾸만 물 속을 거닐게 만든다”고 밝혔다.

박남희 시인(문학평론가)은 해설을 통해 “박정원 시인은 시 속에 내재해 있는 카오스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길어 올려 새로운 시세계를 창출해내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라고 평했다.

박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79년 국세청에 공채로 입문했다. 1997년 첫 시집 ‘세상은 아름답다’ 출간 후 국세청 문우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98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롭다’ 등을 발간했다.

도서출판 지혜, 141쪽, 9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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