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공증인/변호사)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경제성장에 대하여 현실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국민체감의 성장을 중요시하고, 대통령 본인이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보면, 너무나 실망스럽다. 물론 공공기관 개혁, 벤처 육성, 내수 진작 등도 있었지만, 그날 발표한 향후 경제정책의 핵심은 ‘정부의 경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하여 고용과 소비를 촉진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개인의 트레이드마크였지만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였던 ‘토건 활성화’가 없었을 뿐, 그리고 지난 대선의 최대 이슈였던 ‘경제민주화’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을 뿐, 이명박 대통령의 747이 474(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로 환생하였다는 풍자처럼,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발표의 핵심이었던,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무슨 의미일까?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될까? 활성화된다면 그런 기업은 어떠한 기업일까? 신자유주의자들은 ‘규제완화’를 말하기 전에 항상, 전문가도 알기 어려운 거미줄과 같은 각종 행정법규, 수많은 인허가 서류를 받기 위하여 수많은 공공기관을 다녀야 하고, 서류 1장을 받기 위하여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행정현실, 공무원의 자의적인 혹은 떠넘기기식 행정처리 등을 언급하고, ‘규제완화’를 마치 이를 시정하여, 법규와 서류를 간소화하고 원스톱 서비스로 신속화 하는 것처럼 비유한다. 아마도 이러한 시정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전혀 이러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고용증진과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재벌 위주로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1년간 있었던 혹은 지금 현재도 진행중인 공장입지, 외국인투자, 의료법인, 학교인근 사업 등에 대한 규제완화로 이미 이익을 보거나 향후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 삼성, 현대, LG, SK 등의 재벌뿐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는 박 대통령의 이번 발표에 따른 정부부처간 충성경쟁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는 경제전체의 고용증진과 경제성장을 가져오기는커녕, 추가 투자기회를 확보한 재벌의 뱃속만 더 채워주고, 그들의 경제 지배력을 더욱 가속화시키며, 부유층/서민?재벌/중소기업간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경제민주화?분배정의?생태오염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인 부크홀츠(Todd Buchholz)에 의하면,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대선승리를 자축하는 파티에 참석한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두 ≪국부론≫의 저자로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존경처럼, 스미스가 자유경쟁과 시장을 저해하는 봉건적 속박과 정부의 규제를 반대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진정으로 거부했던 것은 (국가의 규제의 의하건, 역으로 국가의 전폭적 지원에 의하건, 나아가 자유경쟁을 통하여 자생적으로 등장하였건 상관없이) 우리 재벌과 같은 경제에 대한 우월적 지배자였고, 항상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그 당시에 우리 재벌과 같은 경제적 지배자가 있었다면, 오히려 그는 정부가 나서서 이를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규제하여야 한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는 “동종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서조차 모이는 일이 드물지만, 만약에 그들이 모인다면 그들의 대화는 사회를 기만하거나 가격인상을 담합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의회가 주인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고 시도할 때 그 상담 상대가 되는 것은 언제나 주인들이다. 그러므로 그 조정이 노동자들에게 이로울 때는 언제나 공정하고 정당하지만, 주인에게 유리할 때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작금의 우리 정부의 ‘규제완화’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누구에 의하여 누구를 위하여 추진되고 있는지, 200여년전의 애덤 스미스가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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