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소설가)

 “두 양주가 딱 붙어서 어딜 갔다 오는가?” “허허허, 딸네 집에 갔다 오네.” “근데 기분이 퍽 좋아 보여. 얼굴에 화기가 돌고 말 매에 기름기가 흘러.” “허허, 그렇게 보이는가. 자네야 말루 두 내우가 반지름하게 옷차림을 하고 다 저녁때 차부엔 왜 나온겨. 어디 갈라는가?” “맞네, 자넨 딸네 집에서 오는데 우린 며느리 호출 받구 가는 길일세. 며느리가 사흘간 출장을 가는데 그 동안 유치원 다니는 손자 놈 건사를 좀 해달라는겨. 자네두 외손주들 땜에 갔다 오는겨?” “맞네, 큰놈이 이번에 중학교 들어가구 작은 놈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잖여. 그 두 놈들 입학식이 오늘이라네. 딸애가 직장엘 빠질 수가 없다고 사정을 하는겨 우리보구 대신 참석해 달라구.” “그나저나 양쪽 번갈아 다니느라 애 많이 썼겄네. 근데두 기분이 그렇게 좋아 보이는구먼?” “자네 아직 ‘금년이 안 가겠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여, 아직 금년이 안 가다니, 이제 삼월 초 아닌가 금년이 갈려면 아직 멀었는데.” “원 이 사람 이거, 왜 내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아직 ‘이해가 안 가느냐.’ 이거여. 이 깜깜아!” “아이구, 그게 그런 뜻여. 새 말 잘 지어내는 젊은 애들이 울구 가겄네. 그건 그렇구 자네 기분 좋게 만든 게 도대체 뭔가 그거나 얼릉 말해보게!” “말할랴믄 좀 길은디 자네 차 시간 땜에 되겄어?” “차 시간 아직두 한 시간 이십 분이나 기다려야 된댜.”

-“입학생 어린이들, 교장선생님께 인사!” “사랑합니다아!”

 “나두 사랑합니다. 우리 일학년 학생들, 인제 우리 일학년들은 앞에 계신 담임선생님들께서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게 돌봐 주시고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다만 우리 학부모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당부 겸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우리 어린 자식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습니까. 더구나 요샌 자식 하나만 낳는 집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난 자식이라 여기겠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요즘 도가 지나칠 정도로 비뚤게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희 학교 한 할머님은 손자가 사학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손자를 데리고 학교에 오십니다. 그냥 오십니까. 등엔 가방을 지고 한 쪽 손엔 신발주머니를 들고 또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손자 앞세우고 운동장을 질러 교실까지 오십니다. 그냥 가십니까.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바닥을 당신 손으로 닦은 다음에 손자를 앉히고 가십니다. 아무리 말리고 교문을 닫아도 막무가내십니다. 닫은 교문 밖은 어떤지 아십니까. 젊은 학부모님들이 자식 군대 입영시키기라도 하듯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인계하면서 잘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고 학교건물 안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이렇습니다. 학부모님들, 안 그러셔도 됩니다. 학교에선 인제 우리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보호하고 가르칩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들을 믿으셔야 합니다.” -

 “참, 교장선생님 말씀 잘 하시네. 내 기분이 확 뚫리네. 안 그려 임자?” “우리 애들하구 지들 엄마 아빠는 안 그러겠지요?” “그럴 게제들이나 되나 워디, 웨래 에미 애비 안쓰럽구 손주 놈들 애처롭지. 우쨋든 오래간만에 기분 참 좋네!”

-신입생 입학을 환영합니다.

    ㅇㅇ중학교 입학식장
 “중학교라 그런지 학부형들두 몇 안 오구, 식두 간단히 끝나네. 인제 손주 놈이 교실에서 책 받아 들구 나올 때꺼정 기다려야겄어.” “근데 저기 오고 있는 사람이 아까부터 자꾸 영감을 쳐다 봤어유.” “아버님이시죠. 저 한식이 고등학교친구 호봉입니다. 손자 입학식에 오셨군요?” “호봉이, 호봉이, 오라 호봉이 맞구먼 얼굴이 의사하네. 자네두 애 입학식에 왔나?” “저 이 학교 행정실장으로 있습니다. 들어가서 차 한 잔 하면서 기다리셔요.” “아닐세. 바쁜데 얼른 들어가게 고맙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거참, 예절 바르구먼. 허허, 참 기분 좋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 “학생애들 참 인사성 바르네유. 보는 애들마다 인사네유. 기분이 좋네유.” “그러게 말여. 근데 왜 이리 늦어, 어이 학생, 신입생들 아직 멀었나. 이반인데?” “아아, 그 반요 아직 안 끝났어요. 곧 끝날 거예요. 안에 들어가 계셔요. 감기 걸리셔요.” ‘참, 신통두 하지!’

 “저기 나오는구먼. 얘, 여기야 여기. 아니 근데 아까 걔가 아직 안 갔나벼 이리로 오고 있네.” “할아버지, 인제 만나셨어요?” “오냐, 끝까지 맘 써줘서 고맙다.” “아녜요. 안녕히 가셔요. 너 이반이라구 그랬지. 내일 보자. 잘가!” -

 “어떤가. 인제 내가 왜 기분이 좋은지 알겄나?” “듣고 보니 자네 말따나 ‘금년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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