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지명고’ 발간한 김현길씨 충북지역 잘못된 지명 유래 등 바로잡아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의 전사지를 충주 탄금대의 ‘열두 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열두 대 앞에는 신립장군의 순절비까지 세워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김현길 한국교통대 명예교수는 신립장군의 전사지는 열두 대가 아니라 달천의 월탄변이라고 말한다. ‘열두 대’설화는 신립장군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순절한 사연에 대해 후대인들이 신격화해 승화시킨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원지역에 잘못 전해지는 지명과 유래의 사례를 정리한 책 ‘중원의 지명고’가 발간됐다. 충주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그동안의 연구 결과와 발표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명은 본래 순수 우리말로 붙여진 이름이었으나 한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기록을 하게 되자, 본래의 우리말 지명을 이두식으로, 또는 음역, 의역해 바꿔진 예가 많다”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유래가 왜곡되기도 한 예가 많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삼국의 쟁점지역이었던 계립령에 대해 지금의 조령(鳥嶺)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어 왔으나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문경 관음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하늘재가 맞다고 강조한다. 신라 진흥왕이 들려 악성 우륵의 신가를 들었다는 ‘낭성’은 청주지역이 아니라 국원(충주)에 살았던 우륵과의 관련을 고려할 때 국원의 낭성(지금의 탄금대)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충주가 낳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자인 강수 선생에 관련한 마을 유래비 건립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삼국사기’에 중원경 사량 사람이라 하고, 부곡의 대장장이 딸과 야합했다고 한 구절에서 뚜렷한 근거도 없이 충주시 금가면에서 유사한 지명인 ‘사량리’와 ‘가마골’을 찾아 새로운 사실을 꾸미고 있어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진천 광혜원면 남쪽 소물 마을과 관련된 인물은 조선조 숙종 때 정승을 지낸 ‘허적’이 아니라 조선 초기에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 몰려 일가가 마을을 떠난 ‘허적’이라고 바로 잡는다. ‘울고 넘는 박달재’의 유래와 노랫말을 혼동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김 교수는 “지명에는 각기 고유한 유래나 지역에 따른 환경적 의미, 정치적, 문화적인 다양한 의미가 있다”며 “잘못 전해지고 있는 유래와 표기상의 오류 등도 조사 정리해 올바른 전승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1932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국학대학,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이사이며, 충북 문화재위원, 충북향토문화연구소장,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수서원. 316쪽. 2만8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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