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6년 노래인생…이경섭과 다시 작업해보고파”


“손에 안 잡히는 애인이랄까요? 정말 사랑하는데 늘 안 잡히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 서면 위축되고 평소 행동이 안 나오듯이 음악 앞에선 늘 그랬던 것 같아요.”

가수 조성모(37)는 16년간 해온 음악을 이렇게 비유했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새 앨범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을 내면서 자신에게도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그는 “이젠 음악을 좋은 친구로 두려 한다”며 “시작부터 너무 잘 된 나머지 그게 늘 어깨의 짐이었다. 인기 맛을 알면서 독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비로소 음악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조성모는 1998년 데뷔와 동시에 스타로 떠올랐다. 1집 ‘투 헤븐’(To Heaven)을 시작으로 2.5집을 포함해 3집까지 총 4장의 앨범이 연달아 밀리언셀러를 기록해 지금껏 총 판매량 1600만장의 대기록 보유자다. 1990년대 밀리언셀러 시대 마지막 가수로 꼽히며, ‘얼굴 없는 가수’로 등장해 성공한 ‘신비주의 마케팅’의 원조로도 불린다.

사실 집안에서 절박하게 음악을 한 건 형 성룡씨였다. 형은 신촌과 방배동에서 꽤 이름난 포크 가수였다. 그는 형이 허구한 날 연습할 때 옆에서 흥얼거리며 따라부른 게 전부였다.

“전 너무 평범해서 존재감이 없었어요. 공부도 운동도 특출나게 잘하지 않았죠. 학창 시절 한두 번 노래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둬줬어요. 고 1때, 교통방송 PD인 친구의 아버지가 저를 이경섭, 주영훈, 안진우 작곡가에게 소개해 주더군요.”

이경섭이 그를 눈여겨봤다. 조성모는 한 기획사를 소개받았는데 그곳에선 4인조 혼성 댄스그룹 ‘사천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 팀의 보컬로 1997년 중반까지 1년 반 동안 연습을 했다. 그러나 정식 데뷔는 무산됐고 다시 폐인처럼 살면서 입대만 기다렸다.

그는 “IMF 때여서 집안 사정이 안 좋았고 꿈만 바라보고 살기엔 내가 잉여 인간 같았다. 입대를 생각하던 중 마지막 찾아온 기회가 당시 지엠기획 김광수 사장님이었다”고 말했다.

4일 후 김광수 사장의 지시로 작곡가 양정승이 전화를 해 동부이촌동의 서울스튜디오로 나오라고 했다. 녹음실에는 당시 대스타이던 배우 구본승이 녹음 중이었다. “이런 스타도 보는구나’ 하며 신기했다. 양정승은 노래 한 곡을 주고는 10분 만에 녹음하라고 했다.

다음 날부터 성인가요와 노래방 음악을 주로 녹음하던 강남구 역삼동 한국음반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시작됐다. 당시 김광수 사장도 회사가 어려웠을 때여서 녹음실 비용을 아껴야 했다.

정식 첫 방송은 1998년 10월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였다. 이후 방송 출연 요청이 잇달았다. 그러자 이병헌, 김승우, 황수정, 김정은을 출연시켜 ‘불멸의 사랑’ 뮤직비디오도 제작했다.

“1집이 집안도, 회사도 살렸어요. 부모님은 옥탑방으로 이사를 안 할 수 있었죠. 정말 마음이 힘들 때면 지금도 이때를 기억해요. 그러면 마음에 ‘감사’만 남죠.”
가요계에선 “조성모는 ‘학교 종이 땡땡땡’을 내도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999년 9월 2집은 첫 주문량이 100만장을 넘겼고 총 220만장이 판매됐다.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2000년에는 시인과촌장의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한 2.5집, ‘아시나요’가 수록된 3집을 잇달아 내며 그해 최다 판매량인 총 350만장을 팔아치웠고 ‘잘가요...내 사랑...’이 담긴 4집(2001)도 96만장이 판매됐다. 모두 이경섭과 손잡고 작업한 음반들이다.

“최근 한 방송에서 제 연대기를 돌아봤더니 데뷔부터 10년간 안 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죠. 성공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얻는 건데 성공만 맛봤으니 그게 독이었어요. 이상화 선수가 얼마 전 ‘힐링캠프’에 나와 ‘1등 하던 사람이 2, 3등 하면 하기 싫어지니 어금니 깨물고 했다’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지만 속 깊은 그 말에 오랜 체증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죠.”

조성모는 올라갔을 때 몰랐던 걸 내려오면서 배운다고 했다.

그는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모자라다’는 것인데 그건 다시 채울 또 다른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다양한 음악적인 변화와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빌리 조엘 일대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분도 늘 음악적인 변화를 고민했다고 하더라.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지금이 호재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이경섭과 팬들을 은인으로 꼽은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지만 내가 노래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아버지 같은 존재인 경섭이 형과 다시 함께 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예전처럼 팬들이 많진 않지만 변함없이 날 지지해주는 팬들이 있어 노래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그러고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싶다며 “올해는 2세 계획도 세워야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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