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
능선 위 구름들은 그대로 연화좌인데 철불 같은 허공이 들어앉았다
가까이 떠 있는 산과 멀리 흐르는 산 사이 골짝이 깊어
긴긴밤의 꿈속만 같아라
먹물 듬뿍 적셨다
바탕은 흰데,
한 번 그어 붓질하고 점점이 찍은, 조목조목 친 묵언의 잎갈이 나무
들이 수묵이다
저 첩첩하고 아슴한 것이 소백인가
손끝은 아직 맑고 산자락과 골짝은 눈짐작으로도 넓고 깊은데
뱃속이 텅 빈 목어는 은빛 혀를 내밀어 소백의 등허리를 핥는다
비늘 일어선 몸뚱어리가 퍼득인다
아침이니, 밭두렁에 쌓아놓은 깻단이 젖어 있다
발끝에서 이슬이 깨지고 정강이가 시리다
부석(浮石)이 그 가운데 떠 있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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