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조명한 장편소설 ‘웃방데기’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 세월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동학농민혁명사가 소설 속에 되살아난다. 삶에는 중심이 되지 못했지만 그 역사에서는 당당히 중심에 섰던 우리 민초들과 그들의 ‘한울꿈’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충북 영동 출신으로 19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한 채길순 소설가(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최근 동학농민혁명사의 한복판을 조망한 장편소설 ‘웃방데기’를 펴냈다.
지난 1995년 한국일보 광복 50주년기념 1억원 고료 장편소설에 ‘흰옷 이야기’가 당선되며 문단에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그가 다시 우리 앞에 ‘동학농민혁명’을 화두로 던진 것. 단편소설 ‘나비 이야기’에 천민들의 이야기를 보태 장편소설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글에는 동학의 울림이 있다고 말한다. 신문과 잡지에 수차례 걸쳐 연재한 소설과 ‘새로 쓰는 동학기행’ 등 동학 기행문은 모두 발로 쓴 기록들. 연구가 부실한 동학의 역사를 보충하기 위해 현장 답사를 통해 살아 있는 증언들을 채취했다. 1993년 발표한 ‘어둠의 세월’도, 대하소설 ‘동트는 산맥(2001)’, ‘조캡틴 정전(2011)’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에는 120여 년 전, 불꽃처럼 타올라 바람처럼 사라졌던 이름 없는 동학농민군들의 꿈과 열망과 좌절이 묘사된다. 양반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혁명에 뛰어든 종 갑이, 남편이 죽음을 당하자 새 터전을 찾아 나선 계집종 아랑이, 활빈당 행수로 활동하다 처형된 갑이의 아버지 김봉남, 양천 고을 고리백정 을동개 등이 주요 등장인물들. 종과 백정이라는 저주받은 신분의 인물들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세상을 꿈꾸며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이들은 보국안민과 계급해방을 위해 교조 신원운동인 공주·삼례집회(1892년), 광화문복합상소와 보은 집회(1893년)에 뛰어든다. 급기야 1894년 정월 고부민란과 3월 기포, 전주성 함락과 전주화약, 9월 재기포와 동학연합군의 공주성 전투 패배, 관·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토벌 대학살 등 동학농민혁명사 전 과정을 거치며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 꿈은 무참히 짓밟힌다.
소설의 배경은 서울 도성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이다. 청주 초정리, 상당산성, 백화산 등 친숙한 지명들이 충청도 독자들을 숙연하게 한다. 120년 전 이 땅에서 사라져간 동학농민군들의 핍진한 삶을 기록한 이 소설은 우리에게 그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 하다. 작가의 걸출한 입담, 숨 돌릴 틈 없이 박진감 있는 전개로 300쪽이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책이다.
채길순 소설가는 “갑자기 숲의 머리를 쓸어가는 소소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함성과 함께 흰옷 입은 동학농민군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난데없이 소나기 같은 총성과 함께 동학농민군이 짚단처럼 쓰러졌다”며 “잠깐 스쳐간 환상이었지만, 이는 어린 날부터 내 머릿속에서 떠돌던 동학 이야기 조각들이 구름으로 모여들어 한줄기 비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304쪽, 1만1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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