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했던 국무총리가 유임됐다.
정홍원 총리는 지난 4월 27일 세월호 참사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했지만 60일만에 반려됐다. 청와대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한 사실을 발표하고 국정과제가 산적해있는데도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는 또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된 인사수석실을 부활시켜 인사검증상의 결함을 보완키로 했다. 총리후보자의 잇단 낙마에 따른 임시방편 성격의 조치다.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후 국정쇄신을 추진할 '골든타임'을 더 이상 후임총리 논란으로 허비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가피성에 관한 설명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참사책임 문책의 상징성도, 면모일신을 통한 새 내각의 참신성도, 반성과 자기쇄신을 통한 새로운 국정동력 확보도 모두 놓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시 총리후보자를 찾아 임명동의 절차까지 거치려면 국정공백이 길어진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땜질정부로 버틸 상황은 아닌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다짐한 이른바 관피아 혁파 등 국가개조 수준의 사회적 적폐 일소작업은 강력한 전기와 국민여론의 뒷받침,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엄중한 감시와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안부재로 유임된 총리와 흠결이 적지 않은 새 내각진용으로 과제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두 총리 후보의 잇단 낙마는 단순한 검증 결함이 문제가 아니라 인사정책의 폐쇄성에 따른 인력풀의 협소함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과거시대에나 유효했던 단선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국정운영 시각을 털고 자연스럽게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국민과 진정한 '소통'에 나설 전기를 흘려버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여권에서는 청문제도 개선을 제기하고 있다. 후보자 검증이 마녀사냥처럼 성격이 변질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사 논란의 본질은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흠결에 있지 않다. 지나치게 좁은 공직후보군에서 폐쇄적 방식으로 낙점과 검증이 진행되는 인사방식이 불러온,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태라는 측면이 강하다.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후보자에 대해 일종의 여론재판이 전개돼 실제 국회청문절차까지 들어가지도 못한 문제점을 고쳐보자는 것이지만, 국민여론이 받아들이기 힘든 흠결을 가진 공직후보라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인지 의문이다.
공직후보자가 엄격한 도덕성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필요한 업무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도덕성은 공적영역에서 국가의 공공성 확장업무를 맡게 되는 공직의 특수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검증영역에 속한다.
우리사회와 역사를 대하는 기본시각도 마찬가지다. 압축성장기를 거쳐 오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도의 흠결이라면 모르되 먼저 제대로 된 인물을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쳐 국민 앞에 세워야 한다. 국민들은 국회 청문회를 거치지도 못하고 낙마하는 공직자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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