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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힐링토크(2) - "엄마이기 때문에 다시 우뚝"
36.5℃ 힐링토크(2) - "엄마이기 때문에 다시 우뚝"
  • 조아라
  • 승인 2014.07.25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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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상 - 박화자 제천시여성단체협회장


저는 힐링토크에 나와서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는 게 싫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저 가슴 밑바닥에 있는 빛바랜 과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꺼낸다는 것이 또 다른 나의 아픔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딸과 아들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모두 살아오면서 슬픈 사연들 한, 두가지 쯤은 가슴 속에 묻어두셨을 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36년 전 척추카레에스(척추결핵)라는 병을 앓고 있었던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펜팔을 했던 안 상병이었어요. 저와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병을 앓고 있던 안 상병은 희망을 갖게 됐고 병도 호전돼 의병제대를 하게 되었지요. 친정집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저는 그 사람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낳았어요. 그런데 우리 딸이 6개월도 되기 전에 남편 병이 재발했습니다. 저는 먹고 사는 것도 해야 하고 병원비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물세살의 나이에 보따리 행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앞에 아이를 태우고 행상을 나섰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아이가 자전거에서 뚝 떨어졌어요. 아기가 막 굴러가는거에요.
아기는 죽은 듯 보였어요. 저는 아이가 살아나길 바라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아이가 살아난다면 저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서 젖을 짜서 아이 입에 넣었어요. 젖이 목으로 넘어가니 아이가 하며 깨어났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났어요. 저는 둘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호전돼 이제는 사는가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 시아버지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저는 아버님의 생활비를 마련해야했어요. 그리고 1년 후 저희 시어머니도 교통사고를 당하십니다. 그런데 병원비를 받을 길이 없었어요. 저는 세차건 행상이건 화장품 장사건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다 했어요. 지치고 지친 저에게는 마음도, 몸도, 쉴 곳이 없었습니다.
서른 여덟의 지친 저는 말기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8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됐습니다. 암이 난소로 퍼져서 난소 두 개, 나팔관 두 개를 잘라냈어요. 전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곧 슬픔이 사치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남편이 화물 회사를 차렸는데 137000만원이 부도가 난 것입니다. 빚쟁이들이 몰려왔죠. 가장 괴로웠던 것은 친척들의 빚 독촉이었어요. 남편은 행방불명이 됐고요,
대학에 다니는 딸과 아들에게 하숙비도 해결해 주지 못했어요. 결국 아이들은 휴학계를 냈고, 아들은 군대를 가고, 딸은 대학교 2학년 때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소식이 없어요. 그런데 가끔 늦은 밤 전화가 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똑똑. “미안타. 내다. 힘들지? 쪼매만 참아라. 곧 돌아가마. 아들 좀 잘 부탁한데이.” 전화가 끊어집니다. 그날 밤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너무 설움이 밀려오고, 슬프고 무섭고, 안 울려고 이불을 입 속에 구겨 넣습니다. 입술을 깨뭅니다. 그렇게 울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듭니다.
그리고 전 다시 또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10평도 안 되는 해장국집을 차렸어요. 새벽 3시쯤이면 손님이 뜸해요. 그러면 테이블 사이에 몸을 숨기고 쪽잠을 자요. 아침에는 문을 잠깐 걸고 싱크대에 물을 받아 몸을 씻으면서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꼭 성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제천시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익증진, 저소득 한부모 여성들의 복지증진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1년부터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제천새로일하기센터를 위탁, 운영 중입니다. 또 약선음식점을 운영해 26종의 약선 음식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으며, 1대 제천약채락협의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힘들었을 때나 행복했을 때나 제 삶은 늘 고단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은 작은 사고의 차이 때문입니다. 힘들었을 때는 나의 무능력을 탓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애물 뒤에는 반드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저는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때문에 다시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저와 같은 아픔을 갖고 계신다면 저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조아라·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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