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소설가)

정원이가 9살 때 여름날, 그 날은 집식구들끼리 나들이 가는 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고모, 그리고 두 살 아래 여동생 해서 정원이까지 일곱 식구다. 그때 고모는 아직 시집 전인 열아홉 살 처녀로 군내 상업고등학교까지만 마치고 집에서 집일을 돕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 번씩 가는 나들이인데 경운기 한 대 다닐만한 한길 따라 한 시오리 가면 계곡에서 바위 타고 사철 흘러내려오는 차가운 물이 있어 여기에 천막 치고 솥단지 걸어놓고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샛말로 피서여행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더위 피해 나들이를 하는 건 이름난 해수욕장 찾아가는 기와집집 빼고는 유일하다. 그런데 경운기에 1박2일에 소용되는 짐을 싣고 있는데 웬 군인이 마당으로 쑥 들어온다. “필승! 조 일병 휴가 나와 누님 댁에 들렀습니다. 아니 근데 군인 하나 쳐들어왔다고 피난들 가는 겁니까. 아주 한 살림 잔뜩 싣고 있네요.” 외삼촌이다. 군대 간 티를 한껏 내고 있었다. 평소 말붙임이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여겼는데 군대 가더니 능청스럽고 수선스러워진 게 하나 더 붙은 것 같다. “아이구, 처남이구먼. 군대 가더니 인물이구 체격이구 성격이 더 확실해진 것 같네. 잘됐어 오늘 갈 것 아니지이 경운기 좀 끌고 같이 천렵이나 가자구.” 휴가 맡아 누님 찾아온 외삼촌이 한 명 더 늘어 8식구가 됐다.
 그날 고모와 외삼촌이 눈이 맞았나보다. 어쩐지 둘만 따로 떨어져 밤늦게까지 식구들과 따로 지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그러라고 그랬던 것 같다. “요새 젊은 애들이 식구 따라 이 판에 낀 것 만해도 기특하다. 젊은 애들 끼리만 통하는 것들이 있을 테니 끈이 여기 붙어 있지 않아도 돼.” 둘 다 학생 적에 외삼촌이 가끔 오면 고모와 둘이서 스스럼없이 곧잘 어울려 있는 걸 보아온 아버지다. “여보,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다 큰 사돈지간이잖어유. 쑥스럽게….” 엄마가 아버지의 허리를 찌르며 볼멘소리를 하자, “다 옛날얘기다. 쭉 그렇게 이무럽게 지내온 턴데 새삼스럽게 내외 안 해도 된다. 애비 말대로 햐!” 할머니가 재차 허락을 했다. 하여튼 고모와 외삼촌은 저녁밥 먹고 둘이 계곡 따라 올라가 보이지 않았는데 정원이가 누이동생과 산골계곡 밤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이 들 때까지도 두 사람이 천막으로 내려온 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정원인 읍내에 있는 학교에서 파하고 올 때 고모가 가끔 우체국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도 보았다. 그럴 때는 우체부아저씨에게서 편지봉투를 냉큼 받아 들고 고모 방으로 부리나케 들어가곤 했다. 지나놓고 보니 ‘그게 다 외삼촌과의 썸씽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하면 외삼촌은 군에서 제대하고 얼마 있다 취직을 하자마자 고모한테 달려왔던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 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더니 둘이 나란히 엄마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작심한 듯 말했다. “우리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 합창! 이 졸지의 일에 아버지 엄마는 아연실색을 했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아버지가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이 한마디 남기고 아버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엄마도 무슨 말을 할듯할듯하다가 한숨을 크게 내뱉곤 휭 자리에서 떴다.
 끝내 아버진 허락을 하지 않았다. 둘의 끈질긴 석고대죄에도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이럴 순 없다!” 란 말만 하나 더 내뱉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둘도 끝내 굽히지 않고 급기얀 양쪽 집을 나가버렸다. 외삼촌직장이 있는 대처로 가서 살림을 차린 것이다. 정원이만 가끔 이들을 찾아갔다. 그러면 둘은 반가이 맞으면서 온갖 음식을 차려내고 올 땐 용돈이라며 두둑이 주는데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 사이 고종사촌이랄까 외사촌이랄까 헷갈리는 애들도 둘을 낳았다.
 인제 정원이 나이 서른다섯이다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정원인 아버지 친구인 동네노인회 회장을 찾아가 응원을 청했다. 어르신이 기껍게 응하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여보게 친구, 이제 맘 풀게. 자네도 ‘겹혼인’ 이라는 것 알고 있지 않는가. 사돈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다시 맺는 혼인 말이야. 또 ‘덤불혼인’이란 것도 옛날부터 더러 있어 왔잖아. 인척과계에 있는 사람끼리 하는 혼인 말일세. 그러니 그리 흉 되는 게 아니라고 보네. 자네 내외는 물론 애들도 그간 얼마나 맘고생이 컸을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자네가 용단을 내리게.”
 이튿날, 아버진 어머니와 길 떠날 채비를 마치곤, “애비 너 고모네 집 알제. 앞장서거라.” “예?” “야야, 니 외삼춘네 집 말이다.” 어머니가 싱글싱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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