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시인)

 

긴 명절연휴가 끝났다. 이완돼 있던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생활일선으로 복귀하게 됐다. 금년에 처음 실시된 대체휴일까지 하면 예년에 비해 명절연휴로는 넉넉한 추석명절이 된 셈이다. 그러나 긴 연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부류도 있다. 며느리군단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살이’를 걱정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명절 때는 양상이 다르다. ‘명절증후군’을 감내해야 하는 주인공은 여전히 명절 최 일선을 맡고 있는 며느리들이다.
새내기 며느리들의 경우는 더한 모양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방광염이 걸렸네. 우울증 치료를 받았네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소위 싱글족도 명절증후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기어이 알아내서 어떻게든 짝을 지어줘야 한다는 지나친 관심 탓에 정작 당사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대느라 파김치가 된다.
취업 못한 취업준비생, 수능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재수생도 명절증후군에 노출돼 있다. 비만한 사람들이 겪는 외모 스트레스도 명절에 최고조를 이룬다. 각종 질병을 갖다 대는 ‘건강지킴이’부터 오랜만에 만났다고 대놓고 온 몸을 스캔하는 친구들까지 스트레스의 형태도 다양하다. 명절특집프로그램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명절스트레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아예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명절 전.후로 나누어 사례별로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코너도 있다. 시댁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사회문화적 충돌, 심리적 갈등, 선물준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까지 한 바구니에 담은 종합선물세트가 명절스트레스다.

올해는 명절증후군 대처방법으로 재밌는 해결책이 나와 관심을 끈다. 이른 바 ‘가짜 깁스’다. 젊은 주부들이 명절에 아예 시댁을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명절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비책으로 ‘깁스’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연극, 축제 등에 사용되던 연출용 깁스가 이제는 명절증후군을 피하기 위한 ‘며느리필수품’으로 인기상품이 됐다.
값도 저렴하고 사용도 간편해서 명절증후군에 노출돼 있는 싱글 족, 비만족,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생까지 구매층도 다양해 졌다고 한다.
연출용 립스틱도 한 몫을 한다. 실제로 립스틱을 바르자 영락없는 환자의 모습이다. 우습기도 하지만 뒤끝이 찜찜하다. 그렇게라도 가사노동을 피하려는 며느리들의 얄팍한 속셈을 꾸짖는 사람들도 있다. 오죽하면 그런 궁리까지 했을까 하며 동정표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판단은 자유다. 명절증후군의 대상도 범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며느리인 아내와 아내의 시어머니를 어머니로 두고 있는 남자들도 중재자로서 좌불안석의 스트레스를 겪는다. 명절 후에 ‘이혼’과 ‘자살’이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명절스트레스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얘기다.

가짜 깁스까지 하고 명절을 기피하려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
단순히 명절음식준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신세대 며느리들의 ‘잔꾀’로만 볼 것은 아니다.
어쩌면 ‘명절증후군’은 신뢰와 배려, 소통과 나눔이 고갈된 이 시대, 우리 사회전체가 겪고 있는 일종의 ‘번 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일지도 모른다.
’워크홀릭(Workaholic)‘에 빠진 직장인들이 주로 겪는다는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인한 무기력증이 이제는 고향을 찾고 가족들을 만나는 명절에까지 만성스트레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세태가 씁쓸하다.
‘가짜 깁스’라도 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꼭 명절만이 아니고, 며느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 호 정국을 비롯해서 ‘식물국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회지도층인사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군과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이 사회를 탈진상태로 만든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체감경기도 우리를 지치고 우울하게 한다.
이제라도 깁스를 풀어야 한다. 다소 두렵더라도 맨살을 보여야 한다.
‘가짜 깁스’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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