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전·현직 관료와 업체의 유착을 파헤친 검찰의 첫 번째 관피아(관료+마피아) 수사인 철도비리 수사가 넉달여만에 마무리됐다.

●검찰, ‘철피아’ 수사 마무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김후곤 부장검사)는 3일 철도 비리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조현룡(68) 새누리당 의원 등 총 8명을 구속기소하고, 뇌물을 주고받은 철도시설공단 간부와 업체 대표 등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호남고속철 궤도공사 2개 공구 입찰에서 담합한 기업법인 2곳도 기소됐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철도부품 납품업체와 정치인, 공무원, 철도시설공단의 복마전 같은 뇌물 고리를 확인했다.

조현룡 의원은 PST(사전제작형 콘크리트궤도) 납품업체인 삼표이앤씨 대표이사 이모씨로부터 PST 실용화 및 설치확대 대가와 정치자금 등의 명목으로 1억6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5일 구속기소됐다.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은 철도 레일체결장치 제작업체 AVT에서 사업 편의 청탁과 함께 6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송 의원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AVT에서 3억8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호남고속철도 납품업체 선정과 관련해 김광재(58·사망) 전 철도공단 이사장에게 3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영모(55)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철도설계·토목 업체 9곳에서 총 2억2000만원의 금품을 받고 감사 편의를 봐준 감사원 4급 감사관 김모(51)씨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철도시설공단에서는 전 감사 성모(59)씨와 전 부이사장 오모(61)씨가 부품업체에서 각각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부품업체에 내부 자료를 유출하거나 공사설계 변경에 편의를 봐주고 금품을 받은 철도시설공단 부장급 간부 2명과 책임감리원도 구속기소됐다.

고속철도 궤도설계 정보를 제공하고 현금과 상품권 등을 받은 공단 부장급 간부와 지역본부 고속철도사업단장, 레일체결장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또 호남고속철도 1공구(오송∼익산), 2공구(익산∼광주송정) 입찰에서 담합해 각각 1,2공구 공사를 수주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궤도공영, 삼표이앤씨를 기소했다.

삼표이앤씨 대표이사와 궤도공영 회장 등 회사 임원 5명도 담합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 중 뇌물을 제공한 임원들은 뇌물공여로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철도시설공단과 철도 관련 업체의 고질적인 유착관계뿐 아니라 정치권, 감사원 간부들과 특정업체의 유착도 확인했다"며 "업체 관계자의 횡령 등 개인비리와 금품 제공도 신속히 수사해 이달 중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업체-국회의원 한통속

검찰 수사로 드러난 철도업계의 검은 공생에는 한국철도시설공단 간부와 납품업체 대표는 물론 비리를 감시해야할 감사원 감사관까지 가담했다. 민관유착의 꼭대기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있었다.

과점구조 속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 철도고·철도대학 등으로 얽힌 학연, 돈만 건네면 내부정보도 빼내주는 철도시설공단 직원들의 도덕 불감증이 비리의 온상이 됐다.

3일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들의 로비전은 2008∼2009년 경부고속철도 2단계 공사를 팬드롤코리아가 따내면서 불붙었다.

팬드롤코리아와 시장을 양분하는 AVT는 450억원짜리 호남고속철도 납품을 수주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에 나섰고 결국 성공했다.

정치권 마당발로 알려진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 권영모(55)씨를 고문으로 영입해 4년 가까이 3억여원을 쥐여줬다. 이 가운데 3천만원은 수사 도중 자살한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흘러들어갔다. 두 사람은 영남대 선후배 사이다.

'로비스트'로 활동한 권씨는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을 지낸 새누리당 송광호(72) 의원과 이 대표를 연결해줬고 6천500만원의 뇌물이 오갔다. 송 의원은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을 겸직하던 시절에도 자신의 지역구 선거사무소에서 돈다발을 받았다.

AVT 이모(55) 대표는 호남고속철도 사업수주에 우위를 점하려고 감사원 감사까지 돈으로 주무르려 했다.

감사원 감사관 김모(51)씨는 철도고 출신 기술직 서기관으로 감사현장에서 이 대표와 친분을 쌓았다. 이 대표는 김씨에게 뇌물 8천만원과 함께 팬드롤코리아의 문제점을 전달해 자사에 유리한 감사결과를 유도했다.

김씨가 직간접 관여한 감사결과는 2012년 AVT가 호남고속철도 사업을 따내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AVT의 로비공세에 팬드롤코리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팬드롤코리아는 주로 철도시설공단 중간급 간부들에게 뒷돈을 건네고 사업 관련 정보를 빼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미 공단 수뇌부와 국회 상임위까지 뇌물을 뿌린 AVT에는 역부족이었다.

철도비리 수사는 국회와 감사원 등 국가기관이 관리감독·감시 역할을 빙자해 사익을 챙기는 관피아의 정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새누리당 조현룡(69) 의원은 연간 수조원대의 막대한 사업비를 주무르는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뒤 국회에 입성했다. 전문성을 살린다며 활동한 국토해양·교통위원회가 업체의 청탁을 들어주는 자리로 전락했다.

조 의원과 납품업체 삼표이앤씨의 검은 거래는 이사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조 의원은 2011년 내부 절차를 어기고 삼표이앤씨의 사전제작형 콘크리트궤도(PST) 사업을 밀어줬다.

이듬해 총선을 준비하며 선거자금도 받아챙긴 조 의원은 국회 질의 등을 통해 삼표이앤씨를 본격 지원했다.

국정감사에서 삼표이앤씨 제품을 "신설 고속선에 시공하라"며 친정인 철도시설공단을 압박했다. 그러고는 고교 선배와 운전기사를 보내 뇌물을 챙겼다.

검찰 관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금품을 수수하는 고질적이고 지속적인 유착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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