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탄생 120주년… 우뚝선 문학적 성과를 말하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선구자 자리매김… 다양하고 새로운 접근으로 포석 문학의 면면을 살펴

 

● 주제발표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미순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 토론 (가나다순)

△김태하 아동문학가

△오계자 소설가

△오만환 시인·천안 한마음고 교장

△정연승 소설가

 

● 좌장

△노창선 시인·한국교통대 교수

 

● 때·10월 8일(수) 오후 2시

● 곳·충북 진천종박물관 주철장전수교육관 세미나실

● 정리·조아라 동양일보 기자

● 사진·임동빈 〃 사진부 기자

 

▲ 노창선 한국교통대 교수

▷노창선 한국교통대 교수(시인)

“일제시대 민족저항을 하다 당대의 실천적 삶을 찾아 떠났던 길에 일제의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총살을 당하셨던 조명희 선생의 삶을 돌아보며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곱씹어 봅니다. 조명희 선생의 시 ‘경이’에서 노래하듯 생명의 경이감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계절입니다. 오늘의 두 분이 발제하신 내용을 들으며,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이 자리에서 학계에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고 계십니다. 우주가 새 아들을 낳았다고 기별하는 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토론자 분들께서 좋은 질문 던져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오만환 천안 한마음고 교장

▷오만환 천안 한마음고 교장

“방민호 선생님의 주제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흠모하는 포석 조명희의 ‘낙동강’과 최인훈의 ‘화두’를 거듭 읽고 21세기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어 매우 기쁩니다. 문화 수용가인 독자에서 자유롭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 이 시점에서 왜 ‘화두’이고, 왜 ‘낙동강’인가 하는 것입니다. 20세기는 이념 간의 대립이 문제가 되는 그런 시대였다고 보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14년을 살고 있는 현재, ‘지금-여기’의 우리는 20세기와는 분명히 다른 패러다임 속에 놓여 있다는 판단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21세기의 변화된 환경에서 우리가 이 작품을 읽고, 읽어낼 수 있고,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이해와 수용의 지평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무엇인가 묻고 싶습니다. 둘째, ‘화두’의 다양한 특성을 한 가지 관점으로 축소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 논문은 ‘화두’라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 작품을 지나치게 조명희의 ‘낙동강’이나 ‘월남문학’이라는 관점에서만 다루다 보니 원래의 작품 ‘화두’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특성들이 지나치게 소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셋째는 결론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조명희의 ‘낙동강’이 ‘노래에 감싸인 꿈과 고향으로의 낭만적인 재귀’를 다룬다면 ‘화두’는 미래의 고향을 찾아가려는 서사라는 것인지 결론에서 명확히 서술되어 있지 않고, ‘화두’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완강한 에고이즘의 논리’를 갖춘 소설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학 수용가 입장에서 ‘화두’의 상호텍스트성과 해체주의적 경향, 그리고 ‘낙동강’의 박성운보다 더 비극적,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다가신 포석에 대한 인식, 선구적 독립운동가로서의 종합적 평가가 인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인훈의 ‘화두’와 조명희의 ‘낙동강’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종합해서 문학사적 의미에 대해서 현재를 살고있는 비평가의 종합적 주장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첫번째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새롭게 읽을 수있는가 하는 건데 저는 조금이나마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좀 불분명한 것이 있나 봅니다. 이 시대는 이념의 시대였죠. 20세기 말에는 이념의 대립이 다 끝난 것으로 모든 사람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자본주의라는 평가. 소비에트 러시아와 미국의 경쟁 구도, 남북한의 경쟁 구도의 문제 속에서의 어떤 이념의 문제는 끝났는지 모르지만 인간이 세계를 살면서 무엇을 지향해야 한다거나 꿈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화두’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 자신으로부터 다시 출발하라고 했을 때 조금 탄력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20세기적인 명제입니다. 근대사상으로서의 개인주의.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해체해야 또 다른 지평이 열리는 인데 최인훈 선생은 ‘나’ 안에 모든 것을 통합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그것은 21세기에는 약간은 ‘나’라고 하는 것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 숙제로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포석 선생에 대해서는 제가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지 않고, ‘낙동강’에서 꿈이라고 하는 것. 로사의 길 떠남이 본질을 향한 고향 상실 상태에서 미지의 고향을 향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포석의 생애를 다시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연해주 행과 그 이후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 정연승 소설가

▷정연승 소설가

“이번 토론에 참가해 ‘낙동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방 교수님의 논문 발표를 들으면서 얼핏 ‘낙동강’ 보다 최인훈의 ‘화두’가 더 주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지만 ‘화두’를 내세운 이면에 ‘낙동강’을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 교수께서는 최인훈의 장편소설 ‘화두’의 발단과 대단원 부분에 ‘낙동강’의 첫 문장을 인용함으로서 조명희에 대한 오마주를 완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법이 필자로 하여금 ‘낙동강’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화두’를 통괄해 볼 때 ‘낙동강’은 작품의 중심 주제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지어 질의를 하겠습니다. 조명희의 ‘낙동강’과 최인훈의 ‘화두’ 두 작품의 관계양상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인 이념성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지어 ‘낙동강’의 주인공 박성운이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추구했던 세상과 ‘화두’의 작중 화자가 70년 뒤 러시아를 여행하며 찾고자 했던 세상과는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습니까? 또 이러한 이념 문제가 한국문학에 미친 이해득실은 무엇입니까? 또한 여러 작가들이 이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언제쯤이면 한국문학이 이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방 교수

“우리가 전후문학에 대해 근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후문학 자체를 다시 봐야 합니다. 사실 전후문학은 이중적이에요. 8.15 이후도 우리에게 전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것으로 전치돼서 이해되고 있죠. 그러나 그것이 전후이기도 했다는 것. 태평양 전쟁의 전후이기도 했다는 인식을 검토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한국전쟁 이후를 전후라고 생각하는데 그 전후문학이 언제까지냐는 것이 문제죠. 저는 지금까지도 전후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근본적 시각을 가졌을 때만 전쟁 이후 문학을 1,2,3기로 나누는 분석이 가능해지고 그것에 따라 우리 문학을 그것에 가능한 양식으로 총괄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열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전후라는 근본적 시각을 수립하고, 60년대 전반기까지가 1차 전후 문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해방 이후 문학사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요점 중 하나입니다. 최인훈은 월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면에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어요. 조명희도 그랬고요. 사회주의라는 문제를 계급 차별 없음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고, 사회주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적 이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검토해 봐야 합니다. 박성운의 인류적 이상이 스탈리즘과 같을 수가 없고, 조명희 역시 같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이념 대결의 집중점이다 보니 사상적 자유가 주어져 있는 남한 사회에서 보수니 진보니 해서 아주 강렬하게 대립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얼마나 총체적이고 내면적인 우주가 큰 존재입니까. 그런데 정치적인 면으로만 문학인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주는 패악이 굉장히 큽니다. 이를 언제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성찰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인간 삶에 대한 총체성이 커질 때 우리 사회가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 서로를 존재하기 위해 협력하고 의지하는 존재로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 교수

“언제쯤이면 한국 문학이 이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 이념문학은 우리가 그것을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이미순 교수님의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는데요. 김태하 선생님 먼저 질의해 주시겠습니다.”

 

▲ 김태하 아동문학가

▷김태하 아동문학가

“이미순 교수님께서 포석 조명희 선생님의 희곡 ‘김영일의 사’의 독백에 대한 분야를 심도 있게 고찰해 주셔서 덕택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제문을 보니 포석 조명희 선생님의 초기 작품에 대해 평가가 상당히 인색하지 않는가하는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볼 때 그 당시 지식인들의 제일 중요한 과제는 계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명희 선생께서도 문화 활동으로 계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나 당시 여러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화기 초창기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의 의미는 굉장히 큰 것입니다. 이미순 교수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김영일의 사’, ‘파사’ 등 조명희 선생님의 희곡 작품과 이 작품의 공연이 이후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영일의 사’에는 독백이 상당히 많은데 그 당시 연극하시는 분들의 표현 수단으로 그것도 상당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방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의 생각을 관객에게 공감시키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포석 선생을 문학적으로 조명하는데 있어서 이 분야가 인색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김영일의 사’와 ‘파사’를 극예술협회에서 공연하고 우리나라에 연극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데 교수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질문을 마치겠습니다.”

 

▷노 교수

“질문 하시는 내용 속에 답변도 조금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미순 교수님의 답변 듣겠습니다.”

 

▷이미순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학생 운동을 일으키는 아주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신극 운동을 할 만한 배우도 없고 작가도 없고 열악한 상황에서 극예술협회의 활동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조명희 선생이 가담하고, 창작극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연구를 보면 학생 운동 방향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사회주의 경향의 이념극과 극예술연구회처럼 신극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이 작품에서 처음에는 김영일이 고민하고 갈등하는데 작품 결말에는 갑자기 죽어요. 이런 경향이 몇 년 정도 다른 이념극에서도 반복돼 나타나는데 그것은 ‘김영일의 사’가 영향을 준 것이라는 연구도 볼 수 있었습니다.”

 

▷노 교수

“학생극 운동을 통해서 당대의 중요한 문제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우리 문학에 끼친 중요한 영향이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다음으로 오계자 선생님께서 질의 하시겠습니다.”

 

▲ 오계자 소설가

▷오계자 소설가

“이미순 교수님의 발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일의 사’가 공연에 많은 호응을 얻었고, 출판계 쪽에도 다른 작품보다 앞섰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전공이 심리학이라서인지 몰라도 김영일의 내면의 갈등에 많은 관심이 갔습니다. 김영일의 갈등은 그 시대의 갈등이었고, 관중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관심이 갔던 것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광적인 독백을 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표현이 하도 잘돼 있어서 그 어려운 시기에 포석 선생이 심리학 공부까지 하셨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부분을 상당히 높이 봤습니다.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기록을 보니 주인공의 사상이 한 가지 사상이 아니라 혼합된 다양한 사상이기 때문에 주제가 선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 시대의 혼합된 사상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이고, 갈등이고, 그 시대의 갈등이 김영일의 갈등이기 때문에 주제가 더 돋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논문을 보니 사상적 갈등, 내면의 갈등을 어떤 사건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독백을 통해 극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교수님 말씀은 사상적 갈등이 내면화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부분이 이해가 안갔어요. 저는 소설을 쓰다 설명이 지루해지면 대화체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설명이라는 것이 희곡에서 독백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할 때 저는 오히려 대화체로 마무리하는데 교수님 논문에는 ‘조명희는 희곡의 압축성을 고려해 서사를 독백으로 할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

“사상의 주제가 선명하지 않다는 연구들은 처음 말씀드렸다시피 대부분 연구자들이 방향성을 갖고 있는 거죠. 초기 작품이 청년기에 많은 사상적 혼란을 겪어 작품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평가들이 있는데 저도 그런 것 보다는 그 부분도 소중히 여겨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선생님 말씀에 동의를 합니다. 사상적 갈등이 내면화됐다는 것의 중요한 축은 전성원의 돈을 돌려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지만, 김영일이 처음에는 독백을 하면서 기독교 사진을 찢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리스도를 부르고, 평화, 화해를 이야기해요. 일반적으로는 사상적인 갈등을 사건으로 드러냈을 텐데 내면화시킨 부분도 있다는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희곡을 가르치기 전에는 가르치기 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희곡을 가르치다 보니 아니더라고요. 일상 대사와 달리 희곡 대사에서는 서술자가 없어요. 말 한마디 속에 과거의 사건을 집어넣어야 돼요. 대사가 오히려 인위적이어야 한다는 거에요. 대사 속에 사건이나 맥락을 집어 넣어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희곡 쓰는 것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서사적인 맥락을 집어넣는 것이 극작가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것이 기술이 약했던 조명희로서는 굉장히 어려웠던 거죠. 김우진 같은 경우 지문에서 서사를 이야기해요. 그 부분을 처리하는 방식이 시대마다 다 달라요. 조명희는 그 부분을 독백으로 한 것이죠. 압축성을 독백에 넣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노 교수

“긴 시간 동안 의미 있는 말씀을 해 주신 두 분의 교수님과 토론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두 교수님의 새로운 학설은 우리 국문학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연구이며 그야말로 ‘조용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방 교수님의 연구로 ‘월남문학’이라는 용어는 굉장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정착할 것입니다. 또 이 교수님은 그야말로 죽어있는 것과 같았던 ‘김영일의 사’를 독백의 코드에 천착해 살펴보셨습니다. 커다란 울림과 반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제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심포지엄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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