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당신이 1만 4천 년을 살았고 그 오랜 기간 인간들의 비루함과 천박함, 덧없음을 경험했다면, '그래도 인간은 아름답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가 있다.

오는 7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개막하는 연극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다.  
2007년 미국에서 개봉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라이선스 연극이다. 역사학 교수 존 올드맨이 동료 교수들과 송별연에서 자신이 1만 4천 년간 늙지도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논리정연한 가설과 논리를 내세워 자신의 '불멸'을 주장하는 존에게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던 동료들이 점점 혼란과 감정적 동요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와 믿음, 관계, 유한함과 무한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극의 전개는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6일 유니플렉스에서 공개된 일부 장면만 보면 긴장감 있는 흐름과 공감 가는 대사, 대중에게도 친숙한 베테랑 배우들의 완숙한 연기가 주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작품에는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박문수로 열연 중인 이원종을 비롯해 여현수, 김재건, 최용민, 이대연, 서이숙 등 TV와 영화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기자들이 무대에 선다. 이 작품은 이원종의 프로듀서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날 같은 곳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출가 최용훈은 "황당하지만,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라며 "지속적인 관계, 영원한 추억, 아름다운 관계로 남는 것 등 가질 수 없는 것들과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객들이 연극에서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기 삶을 반추해보고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존이 1만4천년을 살았다는 진실성에 힘을 보태기 위해 대본 수정, 상황 설정 변경 등 작업을 거쳤다"며 "영화와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결말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집중력과 무대 경험 있는 배우들을 열심히 찾았다"며 "정말 바쁜 배우들을 삼고초려해서 같이 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술사 교수 '이디스' 역을 맡은 서이숙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며 "극중에서 '1만4천년을 살면서 인간의 비루함을 봐왔는데 그래도 인간이 아름답냐'고 묻자 존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이 연극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인류학 교수 '댄' 역할을 맡은 이대연도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1만4천년을 살아온 존은 그렇다고 대답한다"며 "존은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 무한한 존재로서 유한한 존재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 모두를 설복시킨다"고 말했다.

이 작품으로 연극에 데뷔하는 그룹 '애프터스쿨'의 이주연은 "이원종 선배의 제안으로 하게 됐다"며 "영화와 대본을 봤는데 내용이 살짝 어려웠지만 제가 맡은 '샌디' 역할이 너무 좋아서 꼭 해보고 싶었고, 열심히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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