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상임이사)

 

조금 바쁜 체 하다보니 계절이 저만큼 지나간다.
아직 남녘으로 가면 단풍이 남아있겠지만, 그새 나무들의 고운 빛이 다 사라졌다. 아쉽다.
이번 가을은 세월호 사건으로 미뤄졌던 행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더 바빴다.
엊그제 행사에서 만난 관광버스 기사는 가을내내 도로위에서 살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피로감보다는 만족의 미소가 보여서 다행이다. 전국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는 버스기사들은 워낙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남들과 다른 비교의 눈을 가진 것 같다.
마침 시간이 남기에 기다리고 있는 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를 몰고 다니다보면 다시 가고 싶은 도시가 있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망설임 없이 통영시라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상남도 통영시. 그렇겠다 싶었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있고, 매년 여름이면 윤이상을 추모하는 국제음악제가 열리며 박경리, 김춘수, 유치진, 유치환 등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예향의 도시. 바다와 산의 조화가 아름다운 관광도시인데다, 해산물이 풍부해 먹을거리가 많아서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의 설명은 의외였다.
관광지를 주로 돌아다니는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곳은 볼거리 먹을거리가 아니라 도로가 막히지 않고 주차장이 넓게 확보된 곳, 그것도 주차비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란다. 하지만 대다수의 관광지, 특히 도시관광은 늘 대형차량을 세워두는 장소와 비싼 주차비가 가장 큰 고민이란다. 그런데 통영시는 항구를 에워싼 기다란 도로 전체를 대형버스나 승용차가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거리주차장으로 지정해 통영시를 찾는 외지 손님들에게 행정적인 배려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관광버스 기사들이 마음 편하게 차를 세워놓을 수 있고, 손님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면서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버스가 주차한 주변은 수산물 시장과 재래시장이 이어지고, 오래된 골목인 강구안 골목과 포구가 이어져 관광객들은 여유있게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시장에서 한보따리씩 물건을 사들고 모여든다. 주차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승용차를 몰고 온 가족들도 내친 김에 쇼핑도 하고, 식당에도 들르고, 카페에서 바닷풍경을 보면 차를 마신다.
관광객은 편안하고, 상가는 활성화되고......
생각해보니 참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다른 지자체들은 이러한 행정을 펼치지 못하는가 생각이 됐다.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수시로 도시를 찾고 관광지를 찾는데, 그들에게 조금만 편의를 주면 이렇게 다시 가고 싶은 편안한 도시로 각인이 될 텐데.
십수년 전인가 광주비엔날레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비엔날레라는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른 새벽 출발했지만, 광주시에 들어서자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엉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때 나타난 경찰들은 수신호와 안내를 통해 모든 차량들을 행사장까지 안전하게 안내했다. 특히 외지에서 온 차량에 대해서는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하며 안내를 해서 한동안 교통경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졌던 기억이 난다. 한때 속초에서도 비슷한 소문을 들은 것 같다. 관광을 위해 속초를 찾는 외지 차량들에 대해 경찰이 단속 스티커 발부대신 특별하게 주차안내를 해주었다던가.
사실 감동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온다. 원칙만 강조하는 딱딱한 행정을 벗어나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배려의 서비스는 주민들을 감동하게 한다.
만일 통영시가 항구를 찾는 모든 관광버스들에게 주차비를 받으려고 했다면 작은 수익은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도로 이면마다 불법주차가 늘었을 것이고, 시간에 대한 제약으로 시장을 찾는 손님도 줄었을 것이다. 작은 생각의 차이로 발상을 전환한 통영시의 행정서비스는 덕분에 통영시가 관광버스 기사들로부터 가장 가고 싶은 도시, 관광하기에 편안한 도시로 꼽히게 된 것이다. 자칫 원칙과 법규에만 길들여져 있는 행정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서비스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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