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김동진(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사회에는 다양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개인간이나, 동질의 개인이 모인 집단간에도 그 다양성은 유효하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갈등과 충돌, 대립과 반목은 이같은 다양성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선 이같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도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 자유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선 제한되고 강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며 폭력테러를 저지르고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당당할 수 있는 나라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흉기로 테러한 김기종이 그렇다.
북의 전쟁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적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북을 침략하기 위한 공격적 전쟁훈련으로 호도하는 그의 주장은 북의 논리와 동일하다.
7차례의 방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김정일 사망 당시 분향소 설치를 주도한 것만으로도 그를 종북좌파로 규정해도 지나침이 없다.
반미주의를 부르짖던 종북좌파 이석기(옛 통합진보당 의원)는 정작 자신의 아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냈다.
그토록 증오하는 미 제국주의에서 무엇을 배우려 유학을 보냈는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의 주적(主敵)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던 대표적인 종북좌파 강정구(전 동국대 교수)도 부인과 자녀들은 물론 자신까지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심지어 자신의 차남은 그가 규정한 ‘한국의 주적’ 미국의 주한부대인 카투사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한 대학의 시간강사 정상우가 한 계간지에 실은 주관적 논문을 근거로 유관순 열사를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주장한 김정인(춘천교대 교수)의 말 한 마디에 좌파 성향의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 관련 내용 삭제되는 반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논리적 근거로 제시한 논문의 실체가 종북좌파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김정인이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사실은 한 시간강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로 평가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로 제시한 정상우의 논문을 보면, “유관순이 부각된 것은 해방 직후 이른바 '우파'로 지칭되는 세력에 의한 것”이라며 “유관순은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남한만의 현상”이라고 전제한다.
유관순 열사를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단정한 논리적 배경이 ‘북한에선 잘 모른다’는 이유인 셈이다. 
더욱이 이같은 논리마저도 사실과 다르다. 북한 역사 교과서는 유관순 열사에 대해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반일봉기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일제경찰에게 체포된 16살의 녀학생인 류관순은 재판정에서도 재판의 부당성을 견결히 단죄하였으며 감옥안에서도 굴함없이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관과 안보관에 대한 보수적 관점과 진보적 관점을 나누는 것도 궁극적으론 종북좌파의 사상적 침투에 기인한다.
진보는 북한에 대한 온건한 관점과 남북관계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접근과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간 견고한 동맹을 중시한다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정(正)이고, 보수는 부(否)라는 왜곡된 편견을 확산시킴으로서, 궁극적으로 빈부·사회적 지위·계층간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려는 의도는 북의 사상전술과 궤를 같이 한다.
이처럼 사상 자체의 이중성·모순성으로 인해, 현실 순응과 현실 부정이란 이중적·모순적 사고와 행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종북좌파의 현실을 목도하고도, 종북좌파의 꾐에 넘어가거나 옹호하는 어리석음이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러시아 출신 반공산주의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공산정권의 지도층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그 가운데는 자신의 조국과 인간성까지도 부정해야 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공산주의의 실체를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역사적 실체마저 부정하고 왜곡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좌파 척결은 정치적·이념적 대립이 아닌, 대한민국과 국민의 영속(永續)을 위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의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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