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 소설가)

안수길(논설위원 / 소설가)

 카타르시스는 마음속의 고뇌를 표출시켜 그 원인을 발견함으로써 안정을 찾는 것이다. 열등감 억압감을 해소하고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이르되 콤플렉스와 스트레스 해소이고, 바꿔 말하면 정신정화요, 우리식으론 ‘한(恨)풀이’다. 지난 3월1일, ‘KBS공사창립특집 이미자 장사익 콘서트’는 그 방송을 들은 숱한 청취자들의 ‘한풀이’ 한 마당이었다.
 두 사람이 그날, 그 무대에서 부른 노래는 방청객뿐만 아니라, 안방의 TV시청자들의 가슴에 얹혔던 체증까지 뚫어주고 억눌리고 쌓였던 한을 확 풀어 줬다. 공감과 감동이 한풀이로 이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효과를 발휘했던 셈이다.
 이미자나 장사익의 목소리는 성악가들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성대진동이 복부나 구강, 두부의 울림을 동반하는 체내공명(體內共鳴)이 없기 때문이다. 성대의 진동이 직접 음파로 전환, 청취자의 고막에 전달되는 목소리이고, 가성이 없는 순수한 ‘목청’이다.
 그러나 청중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깊이에는 차이가 없다. 가곡과 가요가 각기 지닌 특유의  정조(情操)에 따라 감동의 방향은 다를지라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깊이는 다르지 않다.    ‘천상(天上)의 목소리를 타고 났다’는 이미자의 목소리는 신비한 성대의 마술이 빚어내는, 말 그대로 천상의 소리요, 천생(天生) 나무꾼 모습인 장사익의 목소리는 작대기장단을 마중물삼아 심장에서 뽑아 올리는, 아니 지하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소리다. 그래서 가슴 속에 맺힌 것을 토해내는 소리이고 호소하는 소리이며 절규하고 탄식하는 소리다.    
 이미자의 노래는 애절하고 애달프다. 원망과 그리움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듣노라면 눈물이 난다. 장사익의 노래는 가슴이 시리도록 먹먹하고 또한 애달프다. 참회와 탄식이 가득하면서도 역시 회한에 젖게 한다. 듣노라면 아무리 가슴이 냉돌 같은 사내라도 눈물을 글썽거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들의 노래가 길어 올리는 눈물의 근원은 무얼까?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에 맺혀있는 한(恨)이 아닐까?. 이루고 싶은 숱한 원망(願望)이 좌절되어, 가슴속에 묻히고 쌓여 원망(怨望)이 된 것이 곧 한이고, 그 한을 대신해서 풀어주는 노래로부터 공감과 감동을 얻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때문이 아닌가?
 카타르시스! 즉 억압과 긴장, 갈등으로부터의 해방은 정신을 정화시키고 심리적방어기제의 이완을 부른다. 평온한 가운데서 자신을 성찰하고 순수한 감정의 자연스런 기복을 허용한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표출한다. 굳이 억제하지 않는다. 이미자와 장사익의 노래를 듣노라면 유별나게 눈물이 맺히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공감과 감동 - 동일시(同一視) - 대리충족 - 정신정화 - 감정억제기제 이완 - 순수한 감정표출 - 눈물.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가수의 정서가 청중에게 선물로 이입(移入)되고, 그 선물이 바로 ‘한풀이’요 치유제이고, 그 가시적 증표가 눈물인 셈이다.  
 인간에게서 눈물처럼 순수한 건 없다. 행동에도 말에도 웃음에도 울음에도 과장과 가식이 스며들 틈이 있지만, 눈물에는 그게 있을 수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진심과 진실까지 전달, 전이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순수하다. 그래서 눈물 나게 노래하는 이미자나 장사익은 그 성정 자체부터가 순수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자는 ‘오직 오늘 이 무대에 최선을 다 해 노래할 뿐’이라고 했다. 장사익은 ‘그냥 노래 할래유. 열심히 할 거예유’했다. 이 순박한 열정과 다짐이 또한 울림이다. 이들의 노래와 청취자의 눈물이 동시에 절정에 도달, 합일을 이루는 건 가수의 순수한 성정과 노래에 깃든 특유의 정서들이 만인의 한을 풀어주는 카다르시스, 치유의 징검다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이미자의 목소리에 실린 애절함은 곧 어린 섬색시의 하소연이고 가슴 한 구석에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뭇 여인들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 어머니 지금 뭐 하신대유/...... /아들아 / 너 혼자 내려갈 때/ 길 헤맬까 걱정이다/....어머니를 업고 꽃구경 가는 아들과, 그 등에 업힌 채 솔잎을 한웅큼씩 따서 뿌리는 어머니의 대화는, 부모의 깊은 속을 모르고 불효했던 자식이 뒤늦게 토해내는 회한이고, 그렇게 살아 온 뭇 아들들의 탄식이다. 인생에 한(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오늘 최선을 다하라’ ‘그냥 열심히 하라’ 이미자, 장사익의 애절한 노래 속에 담긴 회한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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