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경칩이 지났건만, 꽃샘바람이 차다.
어느 시인이 꽃샘바람은 잠자는 겨울뿌리를 자극하기 위해 부는 봄손님이라고 했듯, 차갑고 센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면 나무와 풀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 같기도 하다.
황사를 핑계로 나가는 것도 귀찮아질 때 유일한 친구는 TV.
젊은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엔 흥미가 없어 이곳저곳 채널을 돌린다. 이 채널 저 채널, 여러 명의 게스트가 나와 집단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떼 토크’가 대세다. 그런데 게스트 얼굴들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어느 땐 한 출연자가 두 방송에서 동시에 나오기도 하고, 늘 같은 얼굴이 보이다 보니 어느 방송 프로그램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종편 예능이 이렇게 떼 토크 형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일단 제작이 쉽고, 제작비용도 저렴한데다 노년층의 관심을 모을 주제를 잘 선택했다는 데 있다.
주 주제는 건강정보다.
하긴 현대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시대이기도 하다. IMF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공동체적인 가치보다 자기 자신에 머물게 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만 괜찮으면.’ ‘남들은 어떻게 되든 나만 건강하면.’이라는 ‘자기애’ 적 생각은 노후를 위한 재테크나, 건강을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100세시대라는 로망은 삶의 목표를 오직 ‘건강’에 두게 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맞춰 건강정보를 쏟아놓는 종편의 떼 토크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처음 이런 프로그램들이 나왔을 때는 신선했다.
의사, 한의사, 식품영양학자, 요리사, 또는 자연치유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다양한 건강정보를 이야기해 주고, 질병에 따른 운동법, 식사법, 요리법을 가르쳐 주며 가끔씩은 불치병을 고쳤다는 사례자가 나와 증언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뭔가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메모를 하며 들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병엔 이런 것이 좋다더라, 이런 음식이 좋다더라, 이렇게 먹는 방법을 고쳐야 한다더라하며 건강전도사처럼 떠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혼란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다보니 때로는 정보와 정보가 충돌하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체험자들의 이야기가 객관적 사실인 양 전해져 시청자를 현혹시키기도 했다. 거머리, 구더기, 벌레를 먹는 모습이 보이질 않나, 심지어 자기 이름을 알려서 사업을 하려는 의도성 발언이 보이기도 했고, 또 건강식품을 만병통치약처럼 다루고 난 뒤엔 홈쇼핑에서 그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혼란을 주었던 대표적인 것은 ‘효소사건’이다.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이 경쟁적으로 효소를 만병통치약처럼 부각시키면서 효소 광풍이 불었었다. 여러 쇼핑몰에서 효소 상품들이 팔리면서 일시적으로 ‘효소 산업’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한 TV 프로그램에서 효소가 설탕덩어리인 발효음료일뿐 효능이 크지 않다고 방송한 뒤 몇몇 프로그램들이 비슷한 방송을 하자, 효소산업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결국 효소 상품을 산 소비자들만 방송에 놀아났던 셈인 것이다.
이런 정보들에 휘둘리다보면 시청자들은 건강 불안, 식품 불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은 보고 있을 때는 건강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 것 같은 위안을 받지만, 지나고 나면 머리만 복잡할 뿐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저 뭐는 좋고 뭐는 나쁘다 식의 막연한 인식으로 건강염려증만 커지게 된다.
물론 과학적인 정보 위주로 성실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문제는 과도하게 건강정보에 집착하다 보면 그것이 오히려 불안을 초래해, 건강염려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수많은 건강정보들이 넘쳐나지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삼시세끼 골고루 먹고,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적당히 하며, 평소 걱정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가장 바른 건강의 정보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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