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근 총장 동기 로비에 특정업체 밀어주기…'맞춤형' 위조

(동양일보) 고물에 가까운 음파탐지기가 장착돼 제 기능을 못하는 통영함의 비리는 부품 도입사업 초기부터 특정업체에 납품을 주려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군과 검찰은 당시 방위사업청에 근무하며 부품구매의 실질적 결재권자였던 황기철(59·구속기소) 전 해군참모총장이 "(정옥근) 총장님의 관심사업"이라며 부하들을 수시로 압박한 사실도 확인했다.

●'최신형 구조함'에 1960년대 부품 장착 계획 = 9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에 따르면 황 전 총장이 부장이었던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는 2009년 초 통영함 선체고정음파탐지기(HMS) 구매계획서 등을 작성하면서부터 1960년대 수준의 장비를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정옥근 당시 참모총장의 해군사관학교 동기 김모(63·구속기소)씨가 로비스트로 활동한 H사에 일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황 전 총장과 사업팀장을 맡은 오모(57·구속기소) 전 대령은 김씨에게 받은 H사 제품의 사양·실적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맞춤형' 도입계획을 짜고 구매계약까지 밀어붙였다.

장비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실을 감추려고 공문서 위조 등 갖은 불법행위가 동원됐다.

황 전 총장 등은 탑재 예상 시기까지 개발이 완료될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미 2002년 개발돼 미국 소해함·초계함에 장착된 제품인 양 구매계획서를 작성했다.

H사 제품 사양을 기준으로 성능요구안을 작성해 보내라고 해군에 요청하기도 했다. H사 제품은 1960년대 건조된 평택함 등에 탑재된 부품 수준이었다. 구형 구조함을 최신형으로 대체하려는 통영함 건조사업의 목적과 정반대의 일을 벌인 것이다.

요구성능 자체가 '맞춤형'이었던 만큼 H사를 제외한 나머지 방산업체들은 응찰 자체를 포기했다. 이후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안서 평가팀의 부정적 평가도 장애가 되지 못했다.

평가위원들은 1963년 개발된 HMS를 개량해 미군에 납품한 부품이라는 H사의 제안서에 근거가 부족하다며 추가자료를 요구했다. H사는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고 제출하겠다"며 버텼고 황 전 총장의 '비호' 속에 납품업체로 선정됐다.

황 전 총장과 오 전 대령은 이 과정에서 H사가 시험성적서 등 추가자료를 모두 제출한 것처럼 공문서를 위조했다.

●"총장 동기가 부탁인데 잘해줘야 진급" = 합수단은 정옥근 당시 참모총장의 동기가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업체를 선정해 진급하려는 황 전 총장의 욕심과 해사 출신 인맥 로비가 통영함 비리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황 전 총장은 구매계획 및 제안요청서 작성부터 기종결정에 이르는 단계마다 "총장님 관심사항이니 적극적으로 진행하라"며 부하들을 압박했다.

황 전 총장은 당시 같은 소장 계급이던 해사 동기생 5명 중 유일하게 국방부 외청의 '후방부대'에 근무 중이어서 진급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었다. 합수단은 황 전 총장이 정옥근 당시 총장에게서 높은 인사고과를 받으려고 H사를 적극 지원한 것으로 판단했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1월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김씨에게서 "통영함 음파탐지기 사업에 참여하려는데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 H사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실무 책임자인 오 전 대령에게는 "총장의 동기생인 선배가 참여하는 사업이니 신경 써서 잘 도와줘라. 총장과 관계가 좋아야 내가 진급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황 전 총장과 김씨는 해군 조함단 처장 출신으로 아는 사이였다. 김씨와 오 전 대령도 1990년대 후반 조함단에서 처장과 과장으로 함께 근무해 안면이 있었다. 군과 검찰에서는 해군 특유의 끈끈한 조직문화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11월 H사와 음파탐지기 납품계약을 마무리 짓고 이듬해 6월 중장으로 승진, 작전사령관으로 영전했다.

그가 대장 계급을 달고 참모총장 자리에 오르기 직전인 2013년 6월까지 H사의 고물 음파탐지기에 340만1000달러(약 38억1242만원)의 국고가 투입됐다.

방위사업청은 문제의 HMS는 나중에 장착하기로 하고 H사와의 구매계약을 해지한 채 통영함을 일단 해군에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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