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준비 기간 필요해 당장 통과돼도 총선 때 도입 힘들어"
동포사회 "재외국민은 들러리냐"…여야에 개정 노력 촉구

(동양일보) 20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재외국민 선거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여야의 법 개정안이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재외 유권자들은 여전히 불편한 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7년 6월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막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은 2012년 헌정 사상 최초로 투표에 참여했다.

당시 총선과 대선 투표에 참여한 재외국민은 많은 불편함을 호소하며 정부에 개선을 호소했다. 선거인 등록과 투표를 위해 투표소가 설치된 재외공관에 두 번이나 가야 하는 데다 고국처럼 임시 공휴일도 아니어서 투표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동포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이틀 이상 시간을 내야만 했다. 
재외 유권자들이 "참정권 행사를 포기하라는 것이냐"라는 불만을 쏟아내자 여야는 투표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정법안을 발의했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이후 국회에 제출된 재외선거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들의 골자는 ▲인터넷·우편 투표 도입 ▲인터넷 등록 허용 ▲등록 절차 간소화 ▲투표용지 현장 발급 ▲선거인 등록 반영구 명부제 ▲투표소 확대 및 투표 시간 연장 등이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된 상태여서 재외 유권자들은 "재외선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없고 생색만 내려고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들 법안은 지난 3월 18일 출범한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지만 선거구 재확정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현안에 밀려 여야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돼도 예산과 인력이 배정돼야 개선안을 추진할 수 있는데 투표소 확대는 장소 선정만 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인터넷 활용 등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인터넷·우편 투표에 관해서는 "인터넷을 통한 유권자 등록을 준비하는 데도 10개월이 결려 인터넷·우편 투표 제도를 도입하려면 적어도 1년 전에는 법안이 확정돼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내년 총선 때 적용하는 것은 물 건너갔음을 시인했다.

미국의 한 한인회장은 "지난 총선과 대선 이후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외국민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달라진 것이 없다"며 "국내처럼 쉽게 선거에 참여하도록 개선하지 않는 것은 재외국민을 홀대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구홍 교포문제연구소 소장은 "현행 선거 제도는 두루미한테 접시에 있는 물을 마시라는 격"이라며 "재외국민을 선거의 들러리처럼 무시하면 결국 표로 심판받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여야 간 당리당략이 숨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외한인학회 회장인 이진영 인하대 교수는 "각 당이 손익을 계산해 선거 제도 개선안을 내놨지만 사전 연구가 충분치 않았기에 확신이 없는 상황"이라며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것은 양당 모두 재외국민의 선거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정치권이 입으로 선거 제도 개선을 말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유보' 상태로 놔두려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재외동포를 우선순위로 지명하거나 이탈리아처럼 재외선거구를 두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거 제도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투표율 제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각각 2.53%(5만 6천456명), 7.1%(15만 8천235명)에 그쳤다.

두 차례 선거에서 득표율은 야당이 앞섰다. 여야가 선거 제도 개선에 따른 예상 득표율 계산이 달라 제도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편 투표와 인터넷 투표 도입을 각각 대표 발의한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과 김성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당 차원에서 합의는 이뤘지만 정개특위 등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 할 상황"이라고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 의원은 "인터넷을 통한 유권자 등록을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한꺼번에 받는 방안과 한인회 등 중립적인 단체가 투표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안 등 우선 실현 가능한 법안부터 합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외교부는 미국 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선거 제도 개선 간담회를 열어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했고 선관위도 재외선거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선거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하다.

박종범 재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은 "재외국민 유권자는 208만 명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숫자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투표율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재외선거를 제대로 하려면 제도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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