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만상 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생현아저씨다. 또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생현아주머니다. 이 두 사람은 내외지간이다. 요즘 들어서 만상 씨는 윗말에 사는 이 생현아저씨 네로 출근한다. 여길 매일 방문하니 여기서는 그렇게 말한다. “오, 출근했나. 오늘은 어디로 갈까?” “아저씨가 더 잘 아실 테니까 아저씨가 정하셔유.” “글세, 나이 팔십을 바라보는 평생을 여기서 살았지만 이제 남아있는 둠벙은 더툴대루 다 더퉜으니 딱히 갈만한 데가 없구먼.” “저기 살미실 묵어있는 논자락 아래 습지는 워떨까유 질척질척 물기가 있잖어유.” “그럴까, 삽으로 파 엎으면 미꾸라지라두 나올성 싶는디 가세!” 이래서 둘이 한 사발 가량을 잡아오면 생현아주머니는 이놈들을 통으로 뚝배기에 담아 시래기며 정구지 쪽파 등등을 우겨넣고 고춧가루와 마늘다짐을 듬뿍 넣어 매운탕으로 끓여 내놓는다. 그리곤 셋이서 마당 안에 있는 텃밭을 봄갈이 하다보면 또 하루가 지난다.

 생현댁이 스물에 혼인을 했는데 신랑이 불구자다. 신랑이 이실직고했다. 결혼 초 한 달만이다. “내 설마 설마하고 댁과 혼인을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소. 도저히 사내구실을 할 수 없는 불구자이니 이제라도 댁이 마음을 돌리고 내 곁을 떠나시오. 죽을죄를 졌소이다.” 하는 거였다. 그렇잖아도 그간 신체접촉이 없어 이상히 여겼는데 이건 그야말로 청천의 벽력이었다. 그녀는 시댁에 말미를 청해 친정부모에게 갔다. “그렇다면 도루 와라. 넌 아직 처녀야 잘못은 백번 그쪽에 있고.” 친정부모는 완강했다. 하지만 그녀도 완강했다. “아니어요. 다 이것도 제 팔잡니다. 그 사람과 평생을 해로 할 겁니다. 제 결심을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용서하셔요.” 해서 이 두 내외는 물려받은 논 엿 마지기와 텃밭 70여 평에 생과 삶을 걸고 서로를 보듬으며 지금까지도 알공달공 살고 있다.

 만상 씨는 생현아저씨와는 십여 촌이 넘는 인척간이다. 만상 씨가 항렬이 낮아 아저씨라 부른다. 만상 씨는 두 번 결혼에 실패했다. 첫 번째 부인은 도망갔다. 이건 주위사람들의 표현이다. “얼마나 끔직한 일이고 실망했으면 색시가 도망을 갈까. 만상이 그 사람 참 우멍한 사람여 자기 몸 자기가 진작 알았을 텐데.” “감출 일이 따로 있지 그걸 감춰 그래!” 물론 그도 자신의 몸이 남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옛날 내시들 중엔 부인을 얻어 일생을 보냈다는 얘기가 있고, 당장 생현아저씨도 생현아주머니 같은 부인과 혼인을 해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아온 터라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파경 때 사내로서의 실망감과 가버린 색시에 대한 죄책감으로 해서 그는 얼마나 자신을 저주했는지 모른다. 두 번째 부인은 그래도 1년 반을 같이 살았다. 애초 병색이 있는 스물다섯의 색시를 맞이했는데, 폣병이라는 지병이 악화된 데다 사내구실 못하는 남자에게 마지못해 왔다는 한으로 웃음기 잃은 나날을 보내다가 생을 마친 것이다. 첫 번째 실패 후 만상 씨 부모는 자식이 죽은 후에라도 짝 없는 홀아비귀신이 되어 구천을 헤매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두 번째 짝 찾기를 발 벗고 나설 때 솔직히 이쪽의 모든 것을 밝혔는데 이때 이에 응한 쪽이 바로 이 두 번째 색시의 부모였다. 이 부모 역시 딸의 병세가 점점 깊어가는 데다 나이까지 과년하게 되니 처녀귀신이라도 면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딸에게 눈물로 호소하니 딸이 마지못해 눈물을 감추고 부모의 뜻에 따랐던 것이다. 이 불쌍한 색시를 위해 만상 씨는 색시의 병세를 호전시켜 보려고 온갖 정성을 기우렸으나 결국 가산만 솔찮이 축내고 색시를 보냈다.

 
 이후 만상 씨는 훌쩍 집과 부모를 떠나 객지를 나돌며 포목장사도 해보고, 도회지시장 어귀에서 옷가지 난전도 펴보고, 노동판에서 막일도 해보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 이제 나이 들어 집도 부모도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조카들 집에 얹혀살면서 유일한 동병상련의 윗말 사는 생현아저씨네를 매일 찾는다. 늘그막까지도 마나님의 보살핌을 받는 생현아저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고, 영감의 곁을 이날 이때까지 떠나지 않고 보살펴 주는 생현아주머니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다.

 이들 셋은, 이들에게 동네어른들이나 인척들이 “훗날 사후에 제삿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양자라도 세워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며 귀띔이나 천거라도 할라치면, 생현아저씨와 생현아주머니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고, 만상 씨는 ‘싫어!’ 로 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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