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휘말린 이완구 국무총리가 끝내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의 국내 부재 상황에서 국정의 2인자인 총리가 금품수수 의혹에 사로잡혀 사의까지 표명할 수밖에 없게 된 자체는 안타깝지만, 국가적으로도 비상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총리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이 총리는 이번 파문 이후 거듭된 말 바꾸기와 부적절한 처신으로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 수수 의혹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 때문에 내각에 대한 총리의 리더십도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다.
사의 표명 시점으로 따지면 이 총리의 재임 기간은 63일에 불과해, 헌정 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제대'라는 오명도 남기게 됐다. 경우는 각기 다르지만 총리직을 둘러싼 잡음과 수난은 박근혜 정부 들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정부에서 모두 2명의 총리가 사퇴하고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수난사가 쓰였다.
이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의혹을 받으며 도덕성과 자질론을 의심케 했다. 이 총리 본인은 물론 차남의 병역문제를 시작으로 재산 형성과정, 박사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여기에 이 총리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을 상대로 '외압'을 가했다는 지적과 관련내용을 담은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청문회 '문턱'을 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으나 우여곡절 끝에 총리직에 임명됐다. 그러나 2개월여 만에 성완종 파문에 연루되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사퇴 압력을 받았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경제부총리에게 권한을 넘기고 총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지금은 대통령 부재 상황이다. 청와대, 내각은 어떤 흔들림도 없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정치권도 국정현안 챙기기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당장 4월 국회의 산적한 현안 처리에 눈을 돌려야 한다. 사실 '성완종 사태' 이후 주요 현안들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이 제기돼 왔다. 특히 9부 고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공무원 연금개혁은 여야가 정략적 입장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이 합의한 대로 5월 1일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확정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청문회를 거친 박상옥 대법관 후보의 인준안 처리 문제도 국회에서 장기 표류 상태다. '성완종 파문'의 책임은 정치권과 무관할 수 없다. 정치권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를 이유로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검찰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을 계기로 각오를 다시 한번 다져야 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지기 전 남긴 리스트에는 현직 국무총리에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 3명이고 현직 도지사, 현 정권 실세 등 8명이 올라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검찰은 '좌고우면 없는 철저한 수사'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의 오래된 환부를 성역 없이 도려내야 한다. 정치개혁 측면에서 바꿀 일이 있다면 다 바꿔야 한다. 여권 핵심부는 물론 야권 인사에게도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