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 두번째 개인전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지극히 사실적이어야 할 장면이지만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바닥은 매끈한 대리석 대신 흙과 자갈로 가득하고, 천막으로 이루어진 천장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실재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에 방점을 찍는 건 배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김기성(37)씨의 두 번째 개인전 ‘침묵의 서책들’은 ‘헌책방 프로젝트’라는 또 다른 타이틀을 달고 있다. 제목 그대로다. 작가는 독일 Antiquariat im Weyertal, 단양 새한서점, 서울 대오서점, 기억속의 서가 등 네 곳의 헌책방에서 진행한 작업의 결과물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책들을 한 권씩 뒤집어 꽂은 뒤 대형 카메라를 통해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김씨는 “원래는 공공 도서관을 배경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이용자의 불편함과 분실의 우려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무산됐다”며 “차선책으로 헌책방에 이르게 됐고, 장소 섭외를 위해 여러 곳의 헌책방을 방문하면서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헌책방 고유의 분위기와 정취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 정작 소중한 것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반성과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찾고 싶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 정보는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대신 의미는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속의 책들은 제목과 저자명, 출판사명 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농도로 변색되고 탈색된 책들은 마치 다시 제 본령인 나무로 회귀하려는 듯 보인다.
헌책방을 방문하고 작업을 진행하며 공간을 지키는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대오서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신혼 때부터 50년 넘게 사신 곳이에요. 화분, 사다리 등 모든 물건에 그분들의 삶과 취향이 묻어 있었어요. 숲 속에 위치한 새한서점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럽게 곤충이 등장했고, 책 사이에 벌집도 있었고요.”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퀼른 미디어아트 아카데미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긴 여정을 마치고 최근에야 고향 청주로 돌아왔다. 2015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됐으며, 현재 청주 우리문고 3층 아뜰리에 갤러리 공간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청주 653예술상회 갤러리(청주시 서원구 사직대로 248번길 20-1)에서 열린다.
문의=☏010-4194-6816.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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