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분 충주보훈지청 보훈섬김이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보비스 이동 보훈 서비스가 시작된 지 7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난 이곳 국가보훈처에 보훈 섬김이라는 직업을 선택한지 나에겐 올해 4년차 이다. 기억을 되새겨 보면 참 웃긴 일도, 행복한 일도, 가슴 아픈 일도 많았던 4년 이었던 것 같다.

맨 처음에는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그 분들이 살아온 방식이 너무나 힘들어 마음과는 달리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 한마디와 행동에 난 적잖은 상처를 받았고,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를 처음 대하는 어르신들은 내가 좀 남자답게 생겨서인지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내시는 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요리 저리로 옮겨 달라고 하시는 분, 난 그분들한테는 그저 힘센 섬김이로만 여겼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저곳 쪼르르 달리는 쥐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지는 나를 위해 몽둥이로 쥐를 잡겠다고 따라 다니며 나를 보호 해주는 모습, 요즘처럼 더운 여름이면 땀띠 날까봐 선풍기를 가져다주며 시원하게 일 하라고 보듬어 주시는 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남겼다 주시는 어르신들,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과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로 신뢰감이 쌓였고 서로 눈빛만 보면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나쁜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교류가 생겼다.

혹여나 자식들에게서 서운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 어르신들,

여기서 난 또 알았다. 어르신들이 자식 흉을 봐도 나는 절대로 같이 흉을 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것이 일하면서 터득한 나만의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난 요즘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이 수월하고 만나는 것도 즐겁다.

특별히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부모님처럼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다가가니 어르신들도 마음의 문을 여시고 나를 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내가 가는 시간과 요일을 기억하시고 밖에 나와 기다리시다가 내 차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반겨주시며 내 가방을 들어 주시고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면 힘들지 않아”하시며 걱정까지 해 주신다.

어떤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은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라고 엄지손가락을 펴며 나는 선생님 없으면 못 산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귀가 어두워서 전화 통화가 안 되시는 어르신들은 갑자기 자녀분들이 어르신을 모시러 집에 오면 우리 섬김이 얼굴을 꼭 보고 가셔야 한다고 안 그러면 내가 왔다가 헛걸음질 한다며 자식들하고 날짜까지 미루시는 분도 계셨다.

또한 어르신은 복지사들이 불시 점검하는 전화에 연차 쓴 나를 잊어버리고 나를 대변해 주느라 거짓말로 열심히 밖에서 일을 한다며 거짓말로 나를 옹호하시는 분도 있어 당황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나를 걱정 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있어 난 섬김이라는 일이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어르신들의 말씀 한 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이 되고 많은 도움이 된다.

어찌 이렇게 좋으신 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어르신들에게 보답해 드리는 것은 내 힘이 닿는데 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어르신들과 긴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자랑스런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국가유공자분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그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