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운 청주시 상당구 총무과 주무관

 

몇 해 전 일요일 아침 모처럼 집에 들른 동생과 동네 뒷산 산책로를 걷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데 낯선 이로부터 차량을 박았다며 죄송하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황급히 차가 주차된 곳으로 가보니, 범퍼를 약간 받은 것일 뿐 별 외상도 없는 상태였다. 물어보니 후진하다가 실수로 박아서 연락드렸다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주위에 카메라가 있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의심했을 테지만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한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고,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미안했다.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싶은 것이 산책하는 내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화가 나야할 상황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기분! 이런 경험을 한두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요즘 우리가 조직에서 매일 강조하고 있는 ‘친절’, ‘청렴’도 이런 자세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친절’은 남을 배려하는 데서 출발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이 말은 ‘친절’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이자 우리 사회를 함께 어우러져가는 사회로 만드는 핵심 어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세종시에서 편의점 여주인의 옛 동거남이 재산분할 문제로 3명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고, 인천에서도 동거녀와 그 아들을 흉기로 찌르고 자신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런 개인차원의 분노형 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및 ‘대한항공 땅콩 회항사건’ 등 사회적 집단분노의 양태로 그 수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건들은 ‘친절’과 ‘배려’의 마인드가 점차 실종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세계 친절도 평가에서 상위권에 랭크된 국가인 영국의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쏘리(Sorry·미안합니다)”, “파던(Pardon·실례합니다)”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선진국 역시 각박해진 현대문명의 초상인 분노범죄에 많이 노출돼 있지만, 훨씬 안정되어 있고 순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런 습관화된 ‘배려’와 ‘친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이후로 이미 선진국에 맞는 옷을 입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 앞에서 문턱효과(threshold effect)에 막혀 허덕이고 있다. 이는 복지제도, 국가 기간인프라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많은 부분 ‘배려’와 ‘양보’의 미덕이 정착되지 않은 시민의식에 기인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을 습관화하고 ‘청렴’, ‘친절’의 마인드를 정착시켜 이를 마중물삼아 그간 가둬만 두었던 선진화된 시민사회라는 이름의 봇물을 터트려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정치가 체스터필드경은 “‘친절’은 온갖 모순을 해결하면서 생활을 장식하고 얽힌 것을 풀어주며 난해한 것을 수월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자신만을 아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논리가 판치고, 무언가 모르게 어수선하게 꼬여있는 듯한 요즘, 명언이라 불리며 회자되는 18세기 영국인의 말이 귀에 꽂히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 아침 출근하기 전 거울을 보며 웃어보는 연습을 하고, 최대한 밝게 민원인을 대하고 직장 동료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자세를 다잡으며 하루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개개인의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시민운동으로 승화되고 더 나아가, 배려의 마인드를 근간으로 한 선진 시민의식을 촉발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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