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가슴이 아려온다. 그 앳되고 순진무구한 박동혁 의무병의 얼굴이 너무 순수해서 더 슬프다. 겨우 스물 몇 살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언어장애를 가진 엄마의 하나 뿐인 아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해군출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믿음직한 해군으로 참수리-357호 정장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윤영하 대위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무참히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가야 했단 말인가. 한 여자의 든든한 남편이던 조타장 한상국 하사는 얼마나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던가. 그들은 군인이기 전에 바로 우리의 사랑스런 아들이요, 동생이며 조카들이 아니던가. 그 고귀한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8명의 부상자를 내고, 배까지 침몰시킨 북한의 소행에 분노가 치민다.
  솔직하게 말하면 13년 전 서해교전이 있던 그 날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니 제대로 자세히 알고 있지도 못했던 나였고 우리였다는 것이 더 정직한 말일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6월 29일 너나없이 축구 응원에 들떠 열을 올리던 붉은 물결 속에 우리는 있었다. 그들은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기습공격을 당해 적들을 막아내느라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 자체를 제대로 몰랐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요,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연평해전은 그날에 있었던 실화를 실존 인물을 내세워 영화로 재구성했기에 진정성과 현실감을 더해 주니 감동이 더 크다. 김학순 감독은 영화를 연출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리얼리티’(사실성)를 꼽았다. 제작진은 세트, 의상, 분장 등 세세한 것 하나까지 그날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는데 역점을 두었으니 이것은 영화이기 전에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긴박한 전투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며 진한 전우애를 보여준 그들의 이야기이기에 한층 더 가슴 뭉클하다.
  358정 정장이었던 최영순 중령의 증언에 의하면 구조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와 바닷물로 갑판을 청소하는데 357정 대원들의 피로 바다주변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전투였나를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쉽게 흥분하고 부글부글 끓다가는 금세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고 마는 우리의 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꼼수에 가려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절대 대응 사격을 하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청와대의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통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몸으로 막아내다 목숨을 바쳤기에 이 나라가 지켜졌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연평해전은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전투로 인해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유가족 분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고쳐 하게 되었다. 제주도 여행을 가다가 희생된 세월호 유족과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애정과 사랑, 관심, 즉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큰 성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고 여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잊혀져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살려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연평해전이 특이한 것은 7년이라는 세월동안 갈고 닦은 끝에 태어난 역작이며 이러한 뜻에 동참하여 성금과 후원금을 낸 국민이 70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은 그 유래가 없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날의 실화에 공감하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모아 제작을 도운 것이다. 온 가족이 모은 돼지 저금통을 기부한 농부부터 아들을 군에 보낸 주부, 중고등생까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진심을 보냈다. 뜨거운 성원 속에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은 4,500여 명의 개인 및 단체가 참여해 역대 최고 금액이 모였고, 그것은 총 6만여 명의 후원 및 투자로 이어지게 되는 물꼬를 터 주었다. 성원을 보내준 7,000여 명에 달하는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들의 이름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해 그 의미를 더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남북은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휴전 상태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육해공군은 한시도 방심하지 못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 때가 많다. 망망대해에서, 높은 고지에서, 영공에서 물 샐 틈 없는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기에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 할 수 있으니 우리의 국군들에게 한없는 감사의 마음이 솟아난다.
  357호 정장인 윤영하 대위를 비롯해 한상국 조타장,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의무병장, 그리고 18명의 부상자들, 서해를 지켰던 모든 영웅들, 지켜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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