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관리해도 비리·부패 기승…선거는 '그들만의 리그'
"선거운동 제한 완화하고 내외부 감시체계 만들어야"

▲ 선관위 직원들이 조합장 후보들의 선거 공보물을 점검하고 있다.

(동양일보) 올해 3월 11일 처음 치러진 농·축·수협 등 조합장 동시선거에서도 비리와 부패가 기승을 부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방위 감시에 나섰지만, 청렴 선거는 백년하청이 돼버렸다. 조합의 폐쇄구조와 과도한 선거운동 제한 규정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당선됐을 때 누리는 혜택이 막대한 데 반해 조합장의 전횡을 막을 장치가 거의 없는 현실도 혼탁·과열 양상의 배경이다.

지역이나 업종 기준으로 다소 다르지만, 조합장의 연봉은 1억원 안팎이다. 농협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치한 공금을 지렛대 삼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다.

조합장은 내부 인사와 예산을 결정할 때 최종 권한을 갖는다. 대의원 간선으로 치러지는 중앙회장 선거에서는 한몫 챙길 수도 있다. 당선을 위해 사활을 거는 후보자들의 매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당선된 중앙회장은 비리의 몸통이 된다. 실제로 선출직 중앙회장은 1~3대까지 모두 구속됐다. 최원병 현 회장도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급기야 3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좋은농협만들기 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일 농협 개혁과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 본부는 "중앙회가 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해 돈놀이만 한다. 농업과 농민은 쇠퇴하는데 농협만 번성한다"며 서명운동 배경을 설명했다. 차기 회장 선거는 2016년 1월에 열린다. 선거가 약 4개월 남았음에도 일선 조합장을 대상으로 거액의 금품 살포가 이뤄진다는 소문이 벌써 나돈다.

조합장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함에도 전횡을 막는 장치는 거의 없다. 조합 상임이사나 감사, 대의원 등이 있지만, 조합장과 대체로 한편이어서 견제 기능이 좀처럼 작동되지 않는다.

조합 자체가 농민이나 어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폐쇄적인 단체여서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도 없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가 보니 각종 이권에 연루돼도 쉽게 들통나지 않는다.

그래서 '조합장은 신도 부러워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 때마다 돈 살포가 반복되는 이유다.

선거철이 되면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지고 어김없이 돈을 뿌린다. 유권자가 일반 선거보다 적어 약발이 곧바로 받는다는 믿음에서다. 유권자들도 은근히 돈을 바란다.

조합장 후보자에게 접근해 돈 선거를 조장하는 선거 브로커도 활개를 친다.

결속력이 강한 한정된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조합장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로 불릴 만큼 폐쇄성이 강한 탓에 후보자들이 금품 살포의 유혹을 느낀다.

올해 동시선거에서 선관위가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제한한 것도 금품 선거를 부추긴 요인으로 분석된다.

부산의 한 수협 조합원은 6일 "명함 배포와 공식 선거공보 발송, 문자메시지 전송 외에는 모두 불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현직 조합장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후보들은 단기간에 자신을 알리는 방법이 없어 금품 살포나 향응 제공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조합장 선거의 고질적인 병폐를 고치려면 내외부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조합장이나 이사의 권한이 막강하지만, 견제할 대의원회나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며 "주인의식이 부족한 조합원들이 조합 경영에 무관심인 것도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최창훈 사무처장은 "조합 대의원조차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조합원은 조합 운영에 거의 관심이 없다"면서 "대의원과 감사, 조합원이 참여를 통해 부패와 일탈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돈 선거 관행을 깨려면 후보자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김명상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대부분 불법선거는 돈과 관련이 있다"며 "조합장 직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깨야 한다"고 역설했다.

선거 때뿐만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선거를 도와준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지, 불법으로 이권을 챙기는지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하는 것도 깨끗한 선거를 위한 방편이다.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제한 규정을 완화하고 부정선거 감시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충남의 한 농협 조합원은 "올해 선거는 종이쪼가리만 보고 투표한 '깜깜이 선거'였다"며 "후보자들이 조합원을 모아 놓고 정책과 발전 방안 등을 설명하는 것을 허용해야 부정선거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직이 아닌 후보자는 자신을 알릴 기회가 적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사례가 많은 만큼 선거운동 제한 규정을 일부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같은 수준으로 선거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다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때부터는 후보자들이 선거사무소도 두고 선거운동원도 쓰게 하는 등 선거운동 제한 규정을 완화하는 한편 금품이나 향응제공 같은 부정선거는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선거 때와 비슷한 강도로 단속해야 부패 관행이 개선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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