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농촌 두할머니 일상 담담히 채운 영화 과거굴레 벗은 사람과 사람의 사랑 보여줘

 

영화는 1960년대까지 아들 없는 집안에 씨받이를 들이는 일이 흔했고 어느 집에서는 아이를 얻은 후 씨받이를 내치고 어느 집에서는 그대로 첩으로 눌러앉혔음을 자막으로 알리며 시작한다.

씨받이 또는 첩을 들이는 일이 흔했더라도, 그 본처와 첩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아이를 키워 출가시키고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에도 단둘이 살아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년의 의사가 의사소통이 서툰 환자 대신 환자의 이력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노인을 향해 “어머니 되세요?”라고 묻자, 노인은 “이이가 우리 영감 세컨부(세컨드)요”라고 답한다. 의사는 당황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얼른 화제를 돌린다.

‘춘희막이’(감독 박혁지)는 그렇게 46년간 경북지역의 한 농촌에서 살아가는 최막이(90) 할머니와 김춘희(71)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소재가 흥미로운 만큼 영화를 보는 이는 “이 노인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살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스크린을 대하게 마련이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볼 법한 막장 스토리를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얄팍한 호기심을 채워줄 생각이 전혀 없다.

카메라는 두 할머니의 일상을 가만히 비춘다. 두 노인이 농사를 짓고 장을 보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느긋한 호흡으로 보여준다.

두 할머니가 과거를 돌이켜 어떻게 된 사연인지 육성으로 전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최막이 할머니가 두 아들을 잃고 나서 김춘희 할머니를 직접 들였고 양심 때문에 내치지 못했다는 최소한의 정보만 줄 뿐, 두 할머니는 어떤 심정으로 여기에 이르렀는지 눈물바람을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집중하는 것은 데면데면한 듯, 외사랑인 듯 서로 마주하는 두 할머니의 현재 모습이다. 어떤 극 영화도 일부러 만들어낼 수 없는 생생한 인물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두 할머니는 ‘상식’이나 ‘도덕’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과 사랑을 보여준다.

주름이 깊게 팬 얼굴 사이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는 등 뒤로 두 할머니가 상대에게 품은 진한 진심이 내비치는 순간은 해 저물 녘 윤슬처럼 애틋하게 반짝인다.

‘시골에 계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초대박’을 친 ‘워낭소리’(2009)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가 떠오르는 풍경이 이 영화에도 곳곳에 있다. 앞서 ‘워낭소리’는 296만명을, ‘님아…’는 480만명을 동원했다.

박 감독과 한경수 PD는 이달 초 마을을 다시 찾아 마을회관에서 최막이 할머니의 구순 잔치를 열고 영화를 상영했다.

영화를 본 최 할머니의 소감은 “(할아버지) 산소 장면이 나올 때는 영감 생각에 너무 슬펐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즐겁고 재미있었다”였으며, 포스터를 본 소감은 “못나게 나왔으니 어디에 가져다 쓰지 말라”였다고 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음악을 맡아 새로 작곡한 곡을 들려준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세계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에게 소개돼 독일, 프랑스, 중동, 덴마크, 네덜란드 방송사와 공동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순 제작비 절반이 해외 투자 분이며 해외 배급은 캣앤드독스(CAT&Docs)에서 맡았다.

30일 개봉. 96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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