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12년 전 일이다. 2003년 8월 청주는 이른바 ‘몰카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 젊은 검사의 야욕이 부른 검찰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청주발 몰카사건은 한달내내 정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
특히 이 때는 노무현 집권초기여서 보수언론을 비롯한 당시 야당(한나라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정치공방으로 날이 샜다.
사건은 청주의 사업가 이 모씨가 청와대 양모 부속실장 일행과 함께 자신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에서 술자리를 가진 게 발단이다. 당시 담당이었던 김 모 검사는 세금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등으로 내사를 받는 이 씨가 사건해결을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고 ‘큰 그림’을 그린다. 이 자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친인 정 모씨가 동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은 커졌다.
김 검사는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이 씨) 비호세력이 검찰 내·외부에 있다고 흘려 언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가 하면 2002년 대선 직전 민주당에 정치자금 50억원을 제공한 의혹이 있다고 자신이 적은 수사일지를 공개하며 막장질주했다.
그러나 김 검사는 이 과정에서 사기대출혐의에 대해 선처하겠다며 피의자 홍모 씨를 시켜 양 실장의 몰카를 찍게 했고 이것도 모자라 한 방송사에 제보하도록 했다. 또 박모(여) 씨로부터 위증사건 선처 명목으로 26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는 등 추악한 행위도 드러났다. 몰카사건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아무런 실체도 없이 한 검사의 야욕 앞에 언론과 정치권, 아니 온 국민이 놀아난 꼴이 됐다. 법정구속된 김 검사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당시 청주지검 검사장이었다. 그는 특별수사팀이 별도로 꾸려졌지만 몰카사건을 의혹 남김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평을 들었다. 특히 검찰 최악의 수치로 망신창이가 된 내부를 조기에 추스르는데 최선을 다했다.
한 검찰 직원은 “고 검사장 자신도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상황에서 직원 사기진작을 위해 큰 소리 한번 안내고 조직을 이끌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검사장은 사건종결후 출입기자와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다. 공학도 출신으로서 검사가 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식사주제가 된 몰카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해 소탈하고 솔직담백한 인상을 심어줬다. 점심 한끼를 그냥 ‘땜방’으로 넘기려 하지 않는 진심이 묻어났다. 검사로서 사건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리거나 떼를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점심을 함께 한 기자들 역시 공감했다. 몇 달후 대검 감찰부장으로 옮긴 그는 2005년 서울 남부지검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그런 그가 요즘 정치권의 핫이슈 인물로 등장했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대표를 공산주의자로 몬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론을 맡고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은 2014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고 이사장은 1981년 독서모임 대학생 등 22명을 이적표현물 소지 및 학습,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등으로 구속기소한 부림사건 수사검사중 한명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불법연행돼 22~61일간 구금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은 점을 인정해 무죄 확정했다.
고 이사장이 문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확신한 이유가 황당하다. 문 대표가 ‘부림사건’ 변호인을 했고 그 사람들(부림사건 관련자)과 평생동지가 됐기 때문이란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나라 변호사들 사건 수임할 때 필히 의뢰인 사상부터 검증할 것을 권고한다. 공산주의자로 몰리지 않으려면.
앞서 고 이사장은 2010년 이명박 정부시절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된 후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했다. 여기엔 박원순 서울시장, 김근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 조국 서울대교수, 우상호·이인영·오영식 의원이 올라 있다. 국민들중 이들이 친북반국가행위자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밖에도 그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이후 유가족을 ‘떼쓰는 사람’으로 비유해 논란을 빚었다.
극단적 이념편향자가 돼 보컬테러(입으로 하는 테러)자로 돌아 온 고 이사장. 대한민국을 이념대결로 몰고 가 독일의 괴벨스(나치 선전 및 미화를 책임졌던 히틀러의 최측근)에 빗대 ‘고벨스’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한국판 매카시즘을 노려 무엇을 얻겠다는 건지 속을 알 수 없다. 12년의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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