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수필가

 

8월 무더위에 시원한 폭포여행을 떠났다. 무덤덤한 일상의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다.

내연산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한 고찰이다. 참배를 하고 나와 경내를 살펴보니 원진국사비, 보경사부도 등 보물 4점과 유형문화재 다수가 있다. 깨끗이 쓸어낸 흙 마당을 보니 정갈한 마음을 지닌 스님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경내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적광전은 높은 축대나 계단도 없이 낮고 소박하여 매우 인상적이다. 건물 뒤편에 있는 ‘비사리구시’가 눈길을 끈다. 통나무 속을 파놓은 통으로 오래된 큰 사찰에 가면 가끔 본 기억이 난다. 애초에 이 구시는 사찰에서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 때 재료를 담아 둔 통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조선 후기에 사찰의 큰 행사 때 7가마니의 쌀로 밥을 지어 약 4000명분을 담았던 그릇이라 한다. 이는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랑의 밥그릇이라 생각된다.

경내를 나와 경북8경의 하나인 12폭포가 있다는 산길로 들어섰다. 길옆 수로의 물은 꽤 빠르게 흘러간다. 마치 마음에 낀 무거운 찌꺼기가 씻겨가는 기분이 들어 발길도 가볍고 편안하다. 계곡의 기암괴석은 짙푸른 적송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은 변화가 많아 재미를 더해준다. 대부분 산은 올라갈수록 계곡물이 줄고, 폭포 역시 규모가 작아진다. 그런데 이곳은 계곡이 깊어질수록, 올라갈수록 수량이 많고, 그 생김새도 다르다. 계곡 따라 오를수록 폭포는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지 뽐내는 것만 같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6폭포인 관음폭포는 높이 72m의 두 줄기로 흘러 시원한 경관이 갈증을 풀어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부딪혀 날아온 물방울에 얼굴빛이 환해진다. 수녀님들 몇 분이 사진촬영에 분주하다. 비경 앞에서면 누구나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가파른 사다리 길을 밟고 올라서 흔들다리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사진 찍느라 비좁게 서있는 사람들 틈으로 발을 디뎠다. 쏟아지는 우렁찬 제7폭포인 연산폭포 소리에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폭이 넓은 나이가라폭포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웅장한 요세미티국립공원의 3단 폭포를 볼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그곳처럼 크고, 높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우리 정서에 맞는 폭포다. 숲 기운, 물 기운, 바람기운이 담긴 정겹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어느 시인은 ‘기다리는 이 없어도 떠나 보고 싶어 나는 늘 이런 마음이 되어 문득 길 따라 간다’는 말처럼 나 또한 홀가분하게 떠나는 길 여행이 좋다. 동의보감에 “약보보다 식보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가 낫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걷기가 가장 좋은 보약이라니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며 살아야겠다. 모든 사람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빠르게만 강요당하는 것 같이 사는 현실이다. 걸을 때 머리와 가슴이 자유로워지며 맑고 밝게 한다니 서슴치말고 걸어야겠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걷기여행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