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국(청주대 인문대학장)

▲ 송재국(청주대 인문대학장)

 요즈음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인하여 역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분분하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관점에서의 정의와 서술이 있겠으나, 시간의 변화원리를 공부하고 있는 易學者인 필자로서는 그저 “물리적 시간 위에 기록된 인간적 삶의 의미”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 우주 만물 중에는 유일하게도 인간만이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기록하며 전파한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적 삶을 살고 있기에, 과거의 어떤 잘못된 일을 달리 바꿀 수도 없고, 미래에 전개될 어떤 일의 결과를 미리 내다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인간은 언제나 과거적 삶의 흔적 때문에 고민하고, 미래적 삶을 걱정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실존적 상황’이며, 이른바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겪게 되는 숙명적 고뇌이고 삶의 본질이다. 인간만이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주 만물 중에서는 오로지 인간만이 ‘역사적 존재’로 등장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기능인 의식 작용을 단순한 진화론적 시각으로만 해석하게 되면, 원숭이도 지금쯤은 역사적 고민을 해야 하며,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주내적 만물 중에는 인간만이 오롯하게 역사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은 왜 인간에게만 역사적 존재일 수 있도록, 시간을 의식할 수 있는 이성을 허락한 것일까? 이 문제는 신명적 영역이기에, 학문적 문제와는 차원과 궤(軌)를 달리하고 있다) 
 동양의 역사를 사상적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서경(書經)은, 인류 최초로 역사적 삶을 마련하신 요(堯)임금의 행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는 하늘의 운행(天行:日月之行)으로 드러나는 하늘의 뜻(天道)를 깨달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격적 삶의 원천이며, 질서인 ‘책력’(冊曆: calendar)을 만들어 천하 인류에게 선포했던 것이다.(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 즉 시간(時)의 법칙을 인간의 삶의 원리로 삼는 데서 부터, 진정한 인류의 역사는 시작(始)된 것이다.  ‘時’야말로 인류 문명(역사)의 ‘씨’(씨앗)인 것이다. ‘시’를 강조하여 경음(硬音)으로 발음하면 그것이 우리말의 ‘씨’인 것이다. 孔子께서 인류 문명의 도덕적 근거를 “씨”(仁)라고 천명한 것은, 시간의 변화 원리인 역도(易道)를 밝히기 위해 일생에 전념했던 공자로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인격적 삶의 원리가 모두 “時”에 근거하고 있음을 해명한 구체적 작업의 성과가 바로 공자가 직접 엮어낸 노(魯)나라의 역사책 “춘추”(春秋)인 것이다. 실로 역사는 하늘의 시간 원리(天道)를 땅에서의 도덕적 삶(地德)으로 펼쳐낸 문명적 기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기록은 一에서 十까지의 숫자라는 도구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一은 생명적 존재의 始作(씨)을 상징하며, 十은 심겨진 그 씨가 그 생명적 의지(뜻)를 완성시켜(終) 결과로 맺어낸 열매를 대변한다. (열매란 봄에 땅 속에 심어놓은 씨가 여름의 성장과정을 거쳐 가을에 땅 위에 그 뜻이 열려서 완성품으로 맺어진 현상을 이르는 말은 아닐까?) ‘時’(때)는 ‘해’(日)가 운행하는 마디(寸: 度數)를 一과 十이라는 數로 나타낸 것이고(時=日+十+一+寸), 一과 十이 합쳐져 하늘의 度數를 규정한 것이 六甲에서의 天干의 ‘干’이며, 하늘의 뜻은 땅(土)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土 역시 一과 十이라는 생명적 ‘始와 終’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선비(선비 사:士) 또한 一과 十으로 표상한 것이며, 본래부터 완성적 의미인 “하늘의 원리 자체(十)”가 땅에서 이루어진 모습을, 사람이 ‘열’(十)을 손으로 잡고(又) 있다는 의미로서 ‘地支’의 ‘支’로 나타낸 것이다. 인간(人)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생명적 근거는 ‘一과 十으로 담아내는 하늘의 운행 마디’(寺:一+十+寸)인 것이니, 이것이 ‘믿을 侍(시)’이고, 그 믿음에 대한 인간의 소박하고 원초적인 신탁(神託)행위(占筮방법)에 활용되는 ‘풀’ 이름이 ‘蓍’(시: 점칠 때 쓰는 마디가 있는 풀)이다. 인간이 하늘의 뜻에 나아가기 위해 쏘아 올리는 화살이 또한 矢(시)이고, 하늘이 인간에게 보여 주고(보일 시:示) 베풀어 주는(베풀 시:施) 은덕을, 바라고 올려보는 인간의 모습도 視(볼 시)인 것이다.
 참으로 하늘의 운행 법칙인 ‘時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인간의 삶 자체가 ‘역사와 문명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삶의 근본 바탕이기에, 시간에 근거한 역사는 소중한 것이고, 역사가 소중한 만큼 이를 가르치는 교과서 또한 바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펴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지금의 역사 논쟁... 자알 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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