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불행하게도 국민이 공권력에 의해 사경을 헤매는 일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반복된다. 이유야 어떻든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창피 그 자체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극명하다는 점이다. 꼭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하듯 한다. 저간엔 인정이나 인간이 갖춰야할 도리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10년 사이에 변해도 너무 변했다. 
꼭 10년 전인 2005년 말, 당시 쌀 협상 비준저지 시위에 참가한 농민 전용철 씨 등 2명이 사망했다.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현 정부(노무현 정부)의 농정은 농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을 달래주기는 커녕 당장 살아가도 힘들게 만들고 있어 사실상 농정부재”라며 전 씨의 죽음이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또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과 의혹이 있는 만큼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아울러 책임규명과 수습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역시 “경찰은 이번 사건의 당사자로서 한 점 의혹없는 조사를 통해 전 씨 죽음에 대한 소모적 갈등이 부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정치권은 국회청문회를 열었고 시민사회단체도 들끓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27일 사과한다. “국민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빈다.” 노 대통령 사과 이틀후 허준영 경찰총장이 자진사퇴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11월 14일, 전남 보성 출신 농민 백남기(69) 씨가 민중총궐기대회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백씨는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2m 가량 뒤로 날아갔고 이 과정에서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입과 코, 귀에서는 피가 흘렀다.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뒤에도 물대포를 20여초동안 계속 쏘아댔다. 확인사격이었다. 백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장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지금껏 의식불명 상태다.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 바친 백씨는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그는 자식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백두산(아들)’, ‘백도라지’, ‘백민주화’. 민주화와 통일 염원을 담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광화문 집회를 놓고 과격시위가 먼저냐, 과잉진압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과격시위든, 과잉진압이든 관련자를 엄벌해 국민이 공감하는 공권력을 확립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집회에 참가한 한 국민이 거리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데도 시각은 진영에 따라 극명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 야당과 진보쪽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고 여당과 보수쪽은 불법시위로 인한 사고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사경을 헤매는 백씨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도 모자라 모욕까지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백씨를 두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를 듣다보면 실성한 사람 말과 다름 아니다. 인륜과 양심이 정상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백씨가 빨간 우의를 입은 시위대의 폭행으로 중태일 수도 있다며 ‘시위대 폭행설’을 제기했다. 그의 지역구(강원 춘천)에선 즉각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는 세월호 인양에 대해선 “시신을 위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고 말했던 사람이다.
또 “선진국 미국에선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이 죽어도 정당하다”(새누리당 이완영 의원), “미국에선 경찰의 정당방위로 400명이 죽는데 문제없다”(새누리당 이한성의원)고도 했다.  
아무리 당리당략이라 하더라도 게시판 댓글 수준의 막말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중태에 빠진 그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괴담을 늘어놓으며 두번 죽이려는 심보다.
25일이면 백씨가 위독한 상태에 빠진 지 열하루가 된다. 정부여당에서는 병원에 모습은 커녕 사과나 위로의 뜻 표명의지 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백씨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의 안녕을 묻고 챙기는데 자존심 하나쯤은 버려도 좋다. 그도 국민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백씨의 큰 딸 도라지 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선을 지켜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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