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논설위원·영동대 교수

얼마전 대전 대덕 장동 새뜰마을사업을 함께 하면서 전북 임실 치즈마을을 다녀왔다. 마을성공 사례 견학지였다.

지난해 방문객만 25만명에 이르고 50여 농가가 생산하는 치즈와 유제품의 매출 규모가 연간 180억원이며 치즈만들기, 피자만들기 체험과 맛집 운영 등으로 벌어들인 소득만 한해 13억원에 달한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임실 치즈마을은 전라도의 젓줄인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마을로서,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과 옥정호를 가지고 있다. 도농상생의 개념을 구현하는 마을체험과 다양하며 풍성한 축제와 즐길거리를 마련하고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마을을 목표하고 있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 불과했던 전북의 조그만 농촌마을에 치즈를 뿌리내리게 한 건 벨기에 국적의 지정환 신부(한국명)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치즈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 신부가 1959년 한국 땅을 밟은 이후, 간척사업을 펼쳐 개간한 농지 30만평을 가난한 농민들 100가족에게 분배하기도 했다.

1967년 치즈공장을 만들고, 지역 청년들과 산양협동조합을 꾸려 지역민의 경제적 자립 발판을 만든 것이 치즈마을의 출발이었다.

임실 치즈마을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리더와 주민들 간의 조화이다.

치즈마을의 성공의 가장 큰 힘은 40여 년간 마을사업을 진행하면서 지 신부의 훌륭한 가치가 지속적으로 마을에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임실 치즈마을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지 신부를 비롯한 여러 선구자인 리더들의 훌륭한 정신과 오랜 시간 끊임없는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리더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주민 모두가 리더가 되도록 배려가 있어 왔다고 한다. 마을조직 내 추진위원장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각 기능과 역할 마다 책임있는 위상을 주고 있다 한다. 주민 모두가 참여하도록 해 왔다. 치즈마을 회원 84가구는 부업으로 마을 운영에 참여하면서 체험 지도, 방문객 안내, 유제품 판매 등 각자 한 가지씩 일을 담당했다. 마을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도 마을사업 이익금 쓰임의 대상으로 했다. 마을만들기 사업에 흔히 나타나는 리더와 주민간의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이다.

한국 최초로 피자용 모차렐라치즈를 만들고 호텔에 납품하는 성과도 일부 거뒀지만 마을 소득사업으로는 자리 잡지 못했다. 반전의 계기는 2003년 임실치즈마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마련됐다. 배당은 없는 대신 일자리 창출을 통해 철저히 소득을 분배했다. 치즈체험으로 벌어들인 돈은 마을발전기금으로 적립해 어르신 일자리 창출과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지원에 사용했다. 마을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업도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도 인정한다. 사업에 따라 이익의 일정 분을 마을에 제공하면 된다. 개인사업을 오히려 활성화하기 위해 마을기금을 융자해준다. 대출상환방식도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공동사업이 갖기 쉬운 책임성 저하, 활력저하를 개인사업과 병행함으로써 활성화된 마을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셋째, 체험소득사업과 마을가치의 조화를 추구한다.

다양한 소득사업을 통해 돈이 되는 선순환의 마을사업을 만들어 왔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마을이 추구하는 가치를 잃지 않았다. 마을 리더들은 초기부터 지 신부가 왜 치즈를 소개했는지부터 시작해 마을의 가치에 대한 고민해 왔다. 돈보다 가치를 붙잡고 출발한 치즈마을은 도농이 더불어 살아가는 학습장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치즈마을의 최종 목표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한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 아프지 않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득을 나눌 수 있는 마을,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마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마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치와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목표가 흔들리지 않았다.

치즈마을의 가장 놀라운 점중의 하나는 마을이 젊어졌다는 것이다. 마을주민 225명 중 30대이하 젊은층이 30여명, 60대 이하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농촌 마을,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 공동체적 가치가 공유되는 임실 치즈마을은 우리 농촌마을이 지향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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