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호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지산길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구세군 냄비에 익명의 독지가가 몇 억원을 기부하는 것을 본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붕괴되지 않는다.

이분들 외에도 얼굴 없는 천사는 또 있다. 청주시 수동에 있는 주중이발관 남기성씨는 50년이 넘게 이발만을 천직으로 알고 사시는 분이다. 내가 아는 것만도 40년이 넘는데 한결 같이 친절봉사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 업소의 절반도 안 되는 4000원을 이발료로 고수한다.

주 고객은 노인들이 대다수고 멀리는 보은서도 오신다고 한다. 이발료가 저렴한 것도 물론 있지만 이분의 친절한 봉사정신과 구수한 입담의 매력 때문이다. 듣고 있노라면 만사형통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해진다.

금년 초에도 이발을 하고 막 나오는데 조금만 내려가면 학교 앞에 200원짜리 백반이 있으니 먹고 가라는 것이다. 설마하니 반신반의하고 갔다. 건물 간판이 ‘빈첸시오’라고 해서 단번에 천주교 냄새가 풍겼다. 점심때가 되어 중년 이상 노인들이 20m는 줄지어 서 있는데 아내는 짜증스런 얼굴로 다른 곳에 가자는 것이다.

“아닐세. 이곳이야 말고 진정한 인생 공부 학교요, 민초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네”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봉사자들은 다 먹고 나간 빈자리가 생기면 급히 수신호를 해서 식판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노인들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천원을 바구니에 넣고 나오니 굳이 거스름돈을 챙겨주는 것이다. 눈물이 날 뻔했다.

하얀 쌀밥에 구수한 시레기 된장국이 나왔는데 노인들의 건강을 염려해서인지 싱겁게 끓였다. 2억개의 유산균이 있다는 김치며, 칼슘보고인 미역줄거리, 싱싱한 들깻잎 무침은 이른 봄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 소박한 밥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기 좀 없으면 어떤가. 지금 극소수를 제외하곤 너무나 기름진 식탁으로 비만과 고지혈증은 물론 문화병이라는 당뇨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2만원짜리 불백을 먹으나 200원짜리 소박한 밥상을 먹으나 우리 위장을 절대로 불평하지 않으며, 오히려 간장을 박수치를 치며 좋아할 것이다. 막장에서 분(糞)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매일 이 같은 일을 반복하시는 이분들의 봉사정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옛날 중국의 남북조시대 양무제는 불교에 심취되어 전국에 8000여개의 절을 짓고 승려를 양성하였다. 곤용포를 내던지고 가사장삼을 입었으며 손에는 불경을 놓지 않았다. 산으로 가겠다는 것을 극구 신하들이 말렸다. 때마침 서역(지금의인도)에서 달마대사가 불도를 전하려 왔다. 평소 크게 존경하는 대사라 기분이 무척 좋은데 “대사 나는 전국에 많은 사찰을 짓고 승려들을 양성하였소. 과연 내 공덕을 얼마나 큰 것이요” 그러자 대사 왈(曰) “아무것도 없습니다”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것이요”하니 “공은 내세우고 그 순간부터 덕은 사라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오른손이 한일은 왼손이 몰라야 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분들이야 말로 음지에서 정·중·동(淨中動) 조용한 가운데 선행을 베푸는 분들이다.

우리네 위정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시장을 누비며 투박하고 비린내 나는 손도 거침없이 잡고 호소하는데 평소에 이런 식당에서 민초들과 조촐한 밥상을 같이 한다면 구태여 표밭을 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전거 타고 운동하는 어떤 국회의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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