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청주 비트윈 대표 소믈리에

 

겨울의 추위가 방안을 가득 덮던 3년 전 이맘때 나는 화이트와인과 묑스테르(munster) 치즈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와 독일 국경, 알자스(Alsace) 지역 산장에서 얼굴까지 가득 덮은 담요를 걷어내고 일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대지를 품은 포도나무들을 보았다. 아침 커피 한잔이 그리운 나를 잠깐 산책이나 하자며 같이 나온 산장 주인은 자기 포도밭이라며 가파른 산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포도밭에 나를 이끌고 갔다.

아침 공기가 너무나도 시원해 날아갈 것 만 같이 가벼웠고, 그곳에서 나는 추운 겨울 삭막한 대지에서 살아있는 활력을 느꼈다. 프랑스 일상 속의 와인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특별한 날에만 즐겼던 와인, 그리고 쓴 소주가 일상인 우리와는 다른 여유롭고 가족적인 느낌이 좋았다. 프랑스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그들이 태어난 해에 만든 와인을 몇 병씩 사선 저장창고에 보관하고 자식 혹은 손자가 성년이 되었을 때 함께 마시는 전통이 있다. 그러니 단순한 주류, 알코올로 취급해선 안 되는 가족적인 문화가 와인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가정에서 긴 저녁 식사를 위해 같이 와인을 마시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음식과의 조화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비싼 와인만을 골라 마시는 것도 아니다. 음식과의 마리아쥬(mariage: 결혼, 만남이란 뜻으로 와인과 음식과의 조화를 표현할 때 쓰곤 한다.)를 나와 같은 전문가처럼 어떤 고기이며, 구이의 정도, 어떤 소스에, 전식, 본식, 후식을 모두 생각하며 와인을 마시진 않는다. 그냥 마트 바구니에 자기 기호에 맞게 2~3유로짜리 와인 몇 병을 보지도 않고 담으며, 동네 까브(Cave: 와인 저장고란 뜻으로 프랑스 전역 및 세계 와인들을 개성 있게 구비해놓은 시음도 가능한 판매점)에 가서 주인과 한참 수다를 떤 후 주인의 추천을 받아 그날 음식과 어울릴 와인을 사오곤 한다. 까브 주인이 마셔보라며 웃으며 추천한 와인을 사와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같이 시간을 보내는 프랑스인 그들에겐 와인이란 일상의 여유 같았다. 내가 느낀 프랑스에서의 와인은, 이방자인 내가 탐구하고자 했던 와인은, 덧붙이고 보태어서 오히려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지 않으려하는 장인들의 손길이었고 여유 그 자체였다.

그들의 여유 속에 담겨 있는 와인 한잔은 프랑스의 모순이라는 ‘프렌치 패러독스(프랑스인들은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섭취함에도 심장혈관 질환이 낮는 데에서 유래된 말)’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파리의 유명한 소믈리에이자 내 스승이었던 장 미쉘 들뤽(Jean Michel Deluc)은 말했다 “최고의 와인이라 말할 수 있는 와인은 오로지 나의 감각에서 나온다”라고 다른 사람의 평점, 평론을 볼 필요가 없이 그들의 얘기에 반문 할 수 있는 본인의 기준을 세우라는 말이었다. 와인, 어려워 할 것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 있다면 좋아하면 그만인 것이다. 만약 좀 더 흥미가 생기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와인 생산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그들의 와인설명을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추천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에 대해 그들은 어떤 음식과 같이 먹으면 좋을지 까지 설명해 놓았을테니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그 요리를 들어보고 와인과 함께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같이 보내면 따뜻한 저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와인에는 간판이 필요 없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내용이 좋다면 겉모습은 상관 없다는 말이다. 추운 겨울아침 그의 포도밭으로 나를 이끈 그 산장 주인의 와인은 간판이 없었지만 그의 진실함과 열정이 그의 와인을 설명하고 있었다. 분명, 그의 진지함이 나에게 동감이 되어 투박할지 모를 그의 와인이 나에겐 정말 훌륭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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