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이근면식’ 공무원 인사혁신 정책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개혁하겠다고 발표하는 인사정책이 국민들 눈엔 자칫 먹고 쉴 궁리만 하냐는 식으로 비쳐지고 있어서다.

인사혁신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후 단행된 정부조직법 개편에 의해 신설됐다.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국민적 합의의 산물이다. 첫 수장은 ‘삼성’ 출신의 이근면(64) 씨가 임명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30년 넘게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인사·관리업무를 맡았던 터라 그의 ‘삼성식’ 인사 혁신이 공직사회에 어떤 식으로 도입될 것인가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인사혁신처가 출범한지 1년 4개월여, 그가 발표하는 인사정책은 가히 혁신적이다. 그러나 철밥통으로 인식돼 온 공무원 조직에 ‘이근면식 민간 DNA’ 도입을 시도, 신선함을 주는 것 같지만 대부분이 현실을 외면한 것이어서 공무원 자신들로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니 국민들은 오죽 하겠는가.

먼저 인사혁신처는 사실상의 안식월제를 실시한다. ‘재충전 휴가제’로 이름 붙여진 이 휴가제도는 공무원이 남은 휴가일을 모아 뒀다가 4년마다 한번에 사용할 수 있다. 연가 일수가 21일인 6년차 이상 공무원은 매년 권장 연가일수 10일을 제외하면 해마다 11일을 저축할 수 있다. 여기에 장기휴가(10일)를 보태면 최대 43일까지 쉴 수 있다.

직장인이 한번에 43일을 쉴 수 있다고 상상해 봐라. 실로 꿈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응은 해당 공무원이나 국민들 모두 부정적이다. 공무원들은 “연가 안 가고 싶어서 안가냐.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가 대신해 줄 건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은 더 격하다. “민간기업은 생각도 못하는 데 공무원들은 쉴 궁리만 하냐. 공무원 갑질 그만하라”는 반응이 주류다.

이런 판국에 인사혁신처가 또 사고를 쳤다. 3.5일 근무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3.5일 근무란 주 40시간 범위 안에서 하루에 12시간씩 3일을 근무하고 나머지 하루는 4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예를 들어 A라는 공무원이 월·화·수 3일을 12시간씩 36시간 근무하고 목요일에 4시간만 근무하면 목요일 오후부터 금·토·일요일까지 3.5일을 쉴 수 있다.

이런 환상적인 근무시스템이 어디 있나. 직장 못 구해 발 동동 구르는 국민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이 놀자 판으로 가자는 건가. 인사혁신처는 이밖에 소극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준 공무원 퇴출, 성과급제 5급(사무관)까지 확대 및 보수체계 성과급 비중 상향 조정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마저도 소극행정의 기준 모호와 공무원 길들이기 제도라며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43일 휴가제와 3.5일 근무제, 이론상으로 OECD 선진정책이요, 혁신정책이다. 그럼 43일 휴가자 자리는 누가 메꿀 것이요, 3.5일 휴가 간 공백은 누가 채울 것인가.

공직사회는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만큼 민간기업처럼 계량화해 업무 결과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다시말해 삼성전자가 1주일에 휴대폰 몇 만개 생산목표를 정했다면 밤을 세워서라도 그 목표를 달성만 하면 된다. 그게 성과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다. 그런데 공직사회는 항상 민원인인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43일 휴가 간 사이 민원은 어디서 해결해야 하며, 또 한편에서 3.5일 휴가 가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옆 동료 직원에게 맡기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도 공무원이 하루 연가를 내거나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면 그 업무는 마비된다. 민원인은 그 공무원이 자리로 돌아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3.5일 휴가를 가기 위해 공무원이 밤 10시까지 근무한다면 국민이 그 시간에 맞춰 업무를 볼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누굴 위한 인사혁신책인지 알 수 없다. 국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자기들 편하려고 국민들을 길들이기 하겠다는 것인지.

‘이근면식’ 인사 정책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경고한다. 현실성 없는 정책을 섣불리 발표해 국민들의 사기와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 기 죽이지 말라. ‘오직 공무원만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나 만들려 한다’는 국민적 비아냥을 듣게 하지 말라. 다시 묻는다. 공무원의 ‘고객’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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