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맞담배 피운 최측근…참여정부 '실세총리'

4.13 총선에서 공천배제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격인 6선 의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일하게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핵심 측근이었던 이 전 총리는 2002년 대선에서 선거기획단장을 맡아 정권창출에 기여했고 참여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두루 맡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시절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됐고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 평민당 신인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선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고 이곳에서 내리 5선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장관으로 교원정년 단축, 두뇌한국(BK21) 사업 등 교육개혁을 추진했지만, 교원정년 단축에 대한 교원들의 반발에 1년 2개월만에 물러났다.

그는 2004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에서 복귀한 후 2기 총리로 발탁되면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실세총리'로 부상했다. 총리 시절 대정부질문 때 한나라당 의원들과 거침없는 설전을 벌여 '버럭해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총리직을 마친 뒤에도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냈고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에는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과 함께 노무현재단을 출범,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한나라당 출신이 당 대표를 맡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탈당했지만, 2011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의 공약인 행정수도 이전을 지휘했던 경험을 고리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 당선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이 과정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후보 담합설이 제기되면서 곤혹을 치렀다.

또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의 '친노 후보' 이미지가 문제되고 안철수 후보 측에서 '낡은 민주당'과 손잡기를 거부하며 이 전 총리의 거취를 후보 단일화의 걸림돌로 제기하자 당시 최고위원 전원과 함께 총사퇴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 대표 시절 여의도 무대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비주류 측은 그가 친노 세력의 막후 실세라고 주장했다. 특히 한명숙 전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 당내 유일한 친노 좌장으로 지목돼 왔다.

이때문에 그는 최근 당내에서 중진 의원 용퇴론이나 험지 출마론이 제기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그 대상으로 거론돼왔다.

당 혁신위원회의 최인호 혁신위원도 지난해 9월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는 상황에서 "당의 고질병인 계파싸움의 악순환을 끊는 마중물이 돼달라"며 백의종군을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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