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순 청주 서원구 수곡1동사무소 주무관

 

‘덕후’ 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덕후란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부른 말로, 오타쿠는 본래 애니메이션·SF 팬에 한정해 불렀으나 현재는 보다 폭 넓은 영역을 포괄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대상 또한 여러가지다. 겜덕(게임 덕후), 야덕(야구 덕후) 등으로 쓰이며, 모두 특정 객체에 깊이 빠져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소수의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마니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덕후’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나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방송매체에서도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잠겨있는 모습을 비춰주며 마치 ‘폐인’인양 그 모습을 그렸다. 그렇기에 덕후를 더 더욱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편집증적 마니아’로 여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인식이 점점 바뀌고 있는 듯 하다.

‘덕후’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그들의 능력을 선보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세계 놀이동산에 있는 롤러코스터를 다 타보았다는 롤러코스터 덕후, 오직 종이를 사용하여 로봇을 만든다는 로봇덕후 등 한 분야에 서 가히 능력자라 할 만한 덕후들이 출연하여 그들이 빠져있는 대상에 대한 본인들의 철학과 신념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을 보면 흡사 묘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버스덕후는 시동이 걸린 버스 엔진 소리만 듣고 그 버스가 어떤 차종인지 알고, 사진 속의 버스가 어느 회사의 몇 년 모델인지를 정확하게 맞춘다. 길을 걷다가도 버스가 지나가면 관찰하고, 그 소리를 들기 위해 몇시간이고 버스를 타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뿐만아니라 버스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독학으로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등 그 지식이나 열정이 정말 덕후답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버스대백과사전을 집필하겠다고 하며, 나아가 국내 최초 버스박물관 건립이 꿈이라 밝힌다.

버스덕후는 나에게 버스에 빠져사는 폐인(?)이라기보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폐인으로 몰거나 공격하는 대신 그들이 가진 열정과 신념을 응원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취미로 시작했던 것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시행착오를 거쳐 그들은 덕후가 되었다. 그 열정이 부럽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무엇을 한 적이 있었던가. 나도 막연히 덕후가 되고싶단 생각을 해본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나도 저렇게 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꿈꾼다. 내게 주어진 일에 집중해서 충실히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공직에서의 진정한 덕후, ‘지방행정의 달인’ 쯤 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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