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명예교수>

▲ 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명예교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던 4월이 가고 녹음방초(綠陰芳草)의  5월을 맞았다. 수해(樹海)의 물결을 보면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자연은 신이다(Nature is God)”라는 말을 떠 올리고 신비로운 초록의 퍼레이드를 보면서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Return to nature)”라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와 ‘인간의 귀의처는 어디인가’를 깨닫게 하는 달이다. 인간의 원형을 탐색하고 그것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달이다. 온 산하가 청풍과 초록의 향연으로 가득차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처럼 연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다. 그래서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였나보다.  어린이들을 찬양하고(5일, 어린이 날), 효도의 가치를 되새기며(8일, 어버이의 날), 부부간에 숭고한 사랑을 약속하는 날(21일 부부의 날) 등이 한데 몰려 있기에 붙여진 명칭일 것이다. 
부모님들은 어린이날을 계기로 자녀들이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재인식하고 미래의 동량재로 양육한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하늘 같이 새기고 보은하는 삶을 계획하며, 부부간에는 진실과 경애로 사랑의 금자탑을 높이높이 쌓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월의 녹음처럼 인자하고 신비스러운 애정과 신의의 가정을 건설하는 것이다. 가정이 온통 사랑과 우애의 물결(공동체)로 출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자녀 및 아동학대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창원의 일곱 살 여자아이, 평택의 실종아동 원영이, 청주의 네 살 아이 암매장, 인천의 11살 학대소녀 탈출, 부천 초등생 토막시신 사건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자녀 및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짐승만도 못한 짓’, ‘인면수심의 비행’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각종의 기념행사를 벌이고 각오를 다지며 법적 장치를 강화하지만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등은 근절되지 않고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정폭력 현상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고도의 산업화에 따른 이기주의의 발달,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공동체 의식의 둔화 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지만 이는 단편적인 진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폭력만연의 원인을 산업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그림자로 보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한국은 5천여 년 간 찌들어 온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정신 및 의식문화의 창달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제일주의 및 성장제일주의 등을 지향하였다. 국정지표 중 경제 활성화를 첫 번째로 제시하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한다. 그럼으로써 정신이나 의식 등은 뒤로 밀려 나거나 경시되었다. 이러한 국정 좌표는 사회의 모든 분야 특히 우애의 합창곡으로 가득 차야 할 가정에까지 침투되었고 가정 및 아동학대로 이어졌다. 사랑으로 메아리쳐야 할 가정에 형이하학적인 폭력이라는 잡초가 자라게 된 것이다.  규범의 사막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더 이상 계속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간접적으로는 정신과 의식 문화의 창달 및 토양의 비옥화를 최상위의 목표로 설정하고, 직접적으로는 사회의 기초이고 초석이 되는 가정윤리 및 우애의 복원을 도모하여야 한다.
이번에 맞는 가정의 달을 계기로 아동학대 및 폭력이 근절되도록 하여야 한다. 사랑의 선물이고 열매로 태어난 자녀나 아동 등에게 불법적이고 인권유린적이며 반윤리적인 학대나 폭력이 가해지게 해서는 아니 된다. 국가와 사회 및 모든 단체가 하나가 되어 학대와 폭력의 사슬이나 고리를 끊게 하여야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비인간적인 학대나 폭력이 자행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폭력자는 공공의 적으로 보고 공동대처하여야 하고 가정은 물론 사회에서 격리되게 하여야 한다. 만천하로 하여금 폭력은 짐승의 세계에서나 전개될 수 있는 야만적 행동임을 인지하게 하여야 한다.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서나 무한사랑의 실천자여야 할  부모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응분의 제재를 받게 하여야 한다. 온 가정이 5월의 짙푸른 녹음처럼 사랑으로 우거지게 하여야 한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본다는 의지로 가정의 달을 맞아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등의 근절에 나서야 한다. 사랑과 평화의 가정을 건설하여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