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 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 / 소설가)

정작 제 어미아비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남들이 아우러져 이러쿵저러쿵한다.
 “갸 말여 갸 석빙이, 그 녀석은 나잇백이는 삼십이 다 돼 가지구 어정뜨기가 한이 없는 놈여. 제 집 일은 나 몰라라 두고 엉뚱한 남의 일만 해주니 말여.” “그러니 제 애미애비는 얼매나 속이 끓겄어!” 부지깽이도 끌어다 쓴다는 이 삼 그루 판에 남의 집 일만 도우러 다니니 도대체가 실속 못 차리는 어정잡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석빙인 반면에 악하지도 졸렬하지도 않고 또 잔꾀가 많은 사람도 아니다. 다만 사리에 어둡고 이해력이 부족할 뿐이다. 이러하니 실속은 아예 멀리 하고 나보다 남을 챙기는 일에 앞선다. 그래서 동네 집집이 농사일에 그의 도움 손을 안 받은 집이 없다. 한데 이것도 입방아다. “그 녀석 말여, 남의 일을 도우면 그것도 일종의 품인데 품삯은 한사코 안 받고 그 대신 제 집일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뭐여 도대체, 영리한겨 덜 떨어진겨?” “덜 떨어진 거제, 품앗이를 해서 서로 주고받을 것을 에끼는 게 이치 아녀!” 그러니까 엇셈도 못하는 빙충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석빙인 여전히 입가에 웃음기를 달고 다닌다. 자기 앞에서 대놓고 이러한 비하의 말을 하는 게 아니니 그건 모르겠고, 만나고 대하는 동네사람들이 늘 밝은 표정만 보이니 그게 즐거운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엔 이러한 자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의 부모가 쓴 소리를 했었다. “니는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 제 집 식구보담 남이 먼저냐. 어지간한 놈이면 지 에미애비가 농사일에 버거워하니 지나가는 할매할배 짐 들어 주는 셈 치고 거드는 시늉이라도 하련만 어쩌면 그리도 모질게 나 몰라라 냐?” “그래 이눔아, 니 엄마 말이 백 번 맞다. 니 누구 자식여 행여 남의 집 자식은 아니잖여?” 그래도 묵묵부답이더니 한참만에야 “알었시유” 한다. 그리곤 매 마찬가지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인제 그러려니 하고는 말길을 새로 틀었다. “장가는 원제 가니. 당장 니 일이 코앞이여 제발덕신 네 새끼나 한번 이 엄마아버지가 안아 보자.” 이 말엔 시무룩한 표정이더니 이도 잠시 “알었시유” 하곤 이것도 그만이다. 동네선 이것도 말거리다. “갸 장가가기 어려울 걸. 하는 일 없이 이리저리 남의 일에나 끼어들기 좋아하고 제 앞은 꾸리지 못하는 위인한테 어느 색시가 올려구 하겄어?” “그도 그렇지만 첫째 학력이 모자랴. 요셋세상에 중학교만 끄슬리구 그만이니 그걸 어따 갖다 내놔.” 이러저러한 말들이 당사자한테는 쉬쉬해 모르고 있지만 동네엔 입바르게 말전주 잘하는 부인네가 있기 마련이어서 석빙이 부모내외의 귀에 안 들어올 리 없다. 그래서 마침 군 축제행사에 참가하는 종목의 예행연습이 마을회관에서 있는 날, 석빙이 엄마가 예행연습이 끝난 자리에서 남편에게 눈짓을 해, 음식차림을 돕고 잔심부름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석빙이를 데리고 나가게 하고는 작심하고 일어섰다. “동네 분들께 한마디 하겄습니다. 우리내외 돈 없고 못나서 우리 석빙이 높이 가르치지 못했네유. 그래서 이 기술 저 기슬 배우다가 모두 여의치 않아 중도에서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반거들충이이구유. 그리고 남의 일 해주고 품싻도 안 밭는 덜 떨어진 놈이고, 제 실속 못 차리는 빙충이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틀리지 않는 사실이지유.” 여기까지는 낮은 억양의 차분한 목소리다. 그런데 갑자기 억양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 실속 없이 허황한 짓만 한다 해서 얼바람둥이가 된 우리 석빙이 도움 안 받은 집 있어유? 있으면 어디 한번 얼굴들 들어보시유!” 이 서슬에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옆 사람들 눈치만 살핀다. “그런데 왜 뒤에서 험담을 하는 거유? 주는 것 없이 도움을 받았으면 의당히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유? 그게 원망스럽구먼유. 제 새끼 제가 추켜세우는 것 같지만 우리 석빙이 어중이 아니유. 어질고 착한 아이어유. 그런데 왜 내려 보는 거유? 말이 있네유. ‘백치천치도 어떤 한 가지 일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 석빙이에게는 제게는 실속이 없어도 남의 일에는 발 벗고 나서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석빙이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재주가 아니겄어유. 지는 그렇게 보는 데유.” 여기서 언성이 더욱 높아진다. “헌데 왜 이걸 모르고, 장가가기 어렵다구유? 어떤 여자가 시집오냐구유? 그게 저에게는 가슴에 못이 박히는 소리네유. 그래서 우리 내외는 결심했어유. 도저히 이런 동네서는 살 수 없다고, 당장 내일이라도 동네 얼바람둥이 된 우리 석빙이 데리고 떠나야겠다고!” 그리곤 눈물을 훔치며 뛰쳐나간다. 이에 동네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뒤따르며 그녀의 옷깃을 잡고 애걸 애걸한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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