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하 수필가

 

운전하면서 길 찾기가 힘이 들어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며 다닐 때가 많다. 처음 방문하는 길도 척척 알아서 길잡이가 되어 주는 내비게이션은 더 없이 고마운 기계임에는 틀림없다.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을 도로표시판을 보면서 찾아 가기도하지만 목적지까지의 주소를 입력하면 신통하게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은 그야말로 길치들에게는 환상적이다. 그런데 믿었던 내비게이션도 가끔씩은 다른 길을 알려 주기도 하며 멀게 돌아가는 길로 안내해 줄때는 오히려 혼선만 빚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럴 때면 기계의 한계성을 느끼며 아는 길도 물어가는 경험을 하게도 한다.

살아가는 데에도 올바른 인생의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제, 자매 또 학교 선생님, 인생의 선배들을 롤 모델로 삼고 삶을 정진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세계의 위인을 생각하거나 좋은 글귀를 마음에 새겨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얼마 전 남자 세 명이 벌인 사건은 정말 입에도 담기 싫은 부끄럽고 일어나면 안 될 일 이었다. 차마 학부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부끄럽고 난처한 일이다. 잘못된 생각 때문에 벌어진 범죄는 아이들에게 끔찍한 내비게이션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며 어른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지금 겪고 있는 충격적인 사건을 수습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발되지 않도록 신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치유되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교실 안에서 배우는 학습도 중요하지만 학교 밖에서 보고 듣는 대로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그야말로 습득의 영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어린 학생들이 염려된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배우며 따라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분명하게 해 주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목적지에 가려는데 내비게이션이 빗나간 방향제시를 한다면 운전자에게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무조건 믿고 따르라고 해서 그 방법이 옳다고는 볼 수도 없고 존경심과 신뢰가 쌓여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신뢰야 말로 언행의 일치가 되어져야 하는 현장의 살아있는 교육이다.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교육은 모순이며 사상누각(砂上樓閣)의 연속일 뿐이다.

여행 중에 들렀던 사우스 다코다 주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난다.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문의 기안을 만든 ‘토마스 제퍼슨’과 노예해방의 대명사가 된 ‘링컨’, 그리고 미국 경제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얼굴들이 자랑스럽게 조각되어 있었다. 책에서 읽었던 그대로 큰 바위에 새겨진 4명의 대통령 얼굴들은 그들의 자긍심 만큼이나 크게 보여 졌다. 업적을 쌓기 전에 그 시대에 필요했던 국가와 국민이 나아갈 바를 정확히 제시한 일들은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들이 주는 ‘신뢰’의 내비게이션이 풀 가동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미국도 그 때가 그립지 않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가 오픈되었다. 정부와 국회는 국민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도록 또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되어주길 바란다면 평범한 가정주부의 지나친 바람일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금 두 손을 간절히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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