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비공개 전환’ 놓고 파행…유족들 “당연히 공개해야” 거센 항의
“환경부, 책임 회피하며 변명 일관” 비판 목소리도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우원식 위원장)가 25일 관련 정부부처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오는 27일까지 이어지는 현장조사의 첫 대상은 환경부와 고용노동부였다. 특위는 이날 세종청사 국회회의실에서 두 부처에 대한 조사를 했다.

여당 의원들의 지각 출석으로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를 넘겨 시작한 현장조사는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회의 시작 직후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현장조사는 전문가들을 위한 실무조사인데, 내실 있게 하기 위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전문가들이 언론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위축감을 느낄 수 있어 전문가 질문을 비공개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자체가 관련 안전성 자료를 ‘영업 비밀’이라며 숨긴 기업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인데, 가습기살균제 조사를 비공개로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도 “3당 간사가 공개하기로 합의한 것을 이제 와서 갑자기 비공개로 전환하자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에 우원식 위원장이 오전 10시 40분께 여야 3당 간사회의를 열어 공개 여부를 논의토록 했다.

그 결과 총 18명의 예비조사위원 중 여야가 각각 추천한 2명 위원의 질의 응답만을 공개로 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질의에 나선 조사위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3642명, 사망자 701명(올해 6월 현재)이 발생하도록 환경부와 고용부은 무슨 대책을 취했는지, 대책이 그토록 늦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책연구기관들이 15년 전부터 ‘살생물제법’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는데,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2011년에도 환경부의 법제화 움직임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우원식 위원장은 유독물질인 PHMG가 제조업체 사업장은 물론 일반 소비자를 위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사용되는 것을 환경부가 2005년에 알았는데도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이에 이정섭 환경부 차관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 입법까지 가는데는 시일이 걸리며, 논의 시작부터 입법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것도 있다”며 “(살생물제법에 대한) 내부적인 논의는 있었으나, 법제화까지는 이르지 못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업장에 사용되는 유독물질은 환경부가 아닌 고용노동부 소관이며, 2005년 가습기살균제에 PHMG와 MIT가 사용될 때에는 유해성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종주 경기대 환경보건학 초빙교수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도 환경부가 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질병관리본부와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환경부 환경보건센터에서 밝혀내지 못 하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 밝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차관은 “가습기살균제 사망자가 병원에서 먼저 발생해 질병관리본부에서 파악했으며, 당시 환경부는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환경보건센터는 아토피 등의 질병에 중심을 둬 그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문은숙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제품안전의장은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CMIT/MIT가 유해성 심사 면제 물질이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추가 심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환경부는 이를 외면했다”며 “미국은 1994년 CMIT/MIT를 농약으로 분류해 흡입을 금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도 2009년 이들 물질을 어린이유해성인자에 포함시켰는데, 유독 가습기살균제에 대해서만 유해성 검토를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CMIT/MIT가 천식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를 논의한 회의 결과가 있는데, 환경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 환경청은 1998년 MIT를 장기적으로 흡입하면 비염이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까지 내놓았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하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왜 그렇게 커졌는지, 그 과정에서 정부는 무슨 역할을 했는지 등은 온 국민이 알아야 할 사항인데, 왜 이를 비공개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 비공개를 주장했던 한 여당 의원은 이날 환경부 현장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일정을 이유로 회의장을 떠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변명으로만 일관한 환경부의 답변 태도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한 피해자 가족은 “오늘도 환경부는 ‘법규가 없어서 못 했다’, ‘제도가 미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로 임할 거면 현장조사가 무슨 필요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가족은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시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피해자 가족들이 더욱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환경부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 하니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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