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한국교통대 교수/시인)

▲ 노창선(한국교통대 교수/시인)

얼마 전 학생 백일장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한결같이 고심하는 것이 과연 이것이 학생들의 사유방식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뒷골을 잡고는 했다. 중학생의 작품에 ‘친정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과 같은 문장이 등장하기도 해서 아연실색하였는데 이런 것은 제외시키면 그만인 것이지만, 정말 애매한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이 손 안에 있는 한 무한대의 복제와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엄마 혹은 누가 대신 써서 문자로 보내줄 수 있고 아무 블로그나 드나들면서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복사해오거나 오려붙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그런 글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학생들을 의심하여 교실과 같은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다 수거한 후 백일장을 치른다면 이 또한 얼마나 건조할까? 학생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백일장이라는 행사가 점점 소멸되어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유명 작가들마저 끊임없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남의 글 베껴 쓰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날 검색한 기사를 읽다가 “학생부 올린 독서활동, 엄마인 내가 다 썼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잠시 눈길이 머문다. 엄마가 대신 써준 글들이 학생부에 올라가고 이것이 대학입학 여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가 대신 작성해주는 학생부의 일부가 입시에 반영될 수 있다니 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가정과 사회에서 양심 교육이 제대로 안된 집단은 부정과 부패의 온상일 뿐이다. 이렇게 교육 받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여기서도 또 다른 편법을 찾게 된다.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퍼나르거나 표절하는 일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다. 표절은 글 도둑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영남, 그는 수십 년간 재롱둥이처럼 때로는 진지한 성악가처럼 무대에서 관객을 얼마나 즐겁게 해주었던가. 난데없이 그림을 그린다더니 사기죄로 고발되어 유명한 만큼 세간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다. 그의 미술작품 대작사건을 보는 눈도 여러 가지다. 진중권 교수는 “조영남 대작사건. 재미있는 사건이 터졌네. 검찰에서 ‘사기죄’로 수색에 들어갔다는데, 오버액션입니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컨셉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한 관행”이라며 “핵심은 컨셉입니다. 컨셉을 누가 제공했느냐죠.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는 없는 것이고, 그 컨셉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지요. 하지만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념은 고루하기에, 여론 재판으로 매장하기 딱 좋은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미학자인 진중권 교수는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의 예를 들면서 개념미술과 팝아트의 미학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조영남이 컨셉을 제공했느냐, 다른 작가에게 작업을 시켰다는 것을 대중이 인지하도록 밝혔느냐, 고액을 주고 그림을 산 사람들이 조영남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알고 작품을 샀기 때문에 환불을 요구한다 등등의 문제들로 이번 대작사건은 그 초점이 압축된다. 판결의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미디어 시대의 예술관은 분명 그 가치가 바뀌고 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예술적 가치관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글쓰기에서 대필의 문제가 어디까지 진정성 있게 해석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학생부의 내용들이 학생들 자신의 글이라는 점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의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된다. 그동안 각 대학에서는 이를 엄정하게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입시 평가를 진행했는가 묻고 싶다.
  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일년에 저서를 100권 이상 발간했다는 보도가 나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테넷 상의 자료들을 편집하는 수준의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의 정보들중에는 불충분하고 그릇된 내용들이 많은데 말이다. 이런 경우 성실하게 그 출전을 밝히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시감.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네 것이면서 내 것인 사상과 감정의 시대. 무언가 충격적인 창의성이 돋보이는 예술가들의, 작가들의 작품이 그리워진다. 시의 이론 중 하나인 낯설게 하기의 방법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되어진 작품만이 진정한 아우라를 간직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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