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열정과 투혼의 무대였다. 비록 10-10(금메달 10개 이상 메달 순위 10위 이내)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온 국민들을 폭염에서 잠시 잊게 해 준 시간이었다.
지난 22일 폐막한 리우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은 금 9, 은 3, 동메달 9개 등 총 21개의 메달을 따 종합 8위(금메달 순)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믿었던 유도, 레슬링, 복싱 등 투기종목에서 금메달 수확을 못했고 일부 선수에 의존한 기초종목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렇지만 색깔을 떠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메달이 적지 않았다. 메달 하나하나에 확실한 스토리와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10대 14로 뒤진 상황을 순식간에 대역전시킨 박상영이 그렇다. 4점 뒤진 상황에서 1점만 내주면 경기가 끝나는 벼랑 끝에서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되뇌이며 역전을 일궈낸 것은 리우올림픽 최고의 히트상품이 됐다. 한국양궁의 남녀 싹쓸이(금메달), 레슬링 김현우와 골프 박인비가 거둔 부상 투혼은 돈 주고도 살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특히 동메달 3개를 딴 태권도 남자 선수들이 금메달 따지 못했다고 기 죽기는 커녕 박수 치고 기뻐하는 모습은 금메달 우선주의에 찌든 한국사회 패러다임을 깨는 몸짓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과거 은, 동메달을 따고서도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이 고개를 숙이곤 하던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나 당당해 보였다. 이젠 국민들로 금메달에만 매몰돼 환호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줘야 한다.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경기중 하나는 단연 여자 골프였다. 여자골프가 관심을 끈 것은 골프여왕 박세리를 시작으로 각종 세계무대를 석권해 온 한국여자골프가 116년만에 부활된 올림픽 무대에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지 궁금했다.
박인비는 분명 한국의 에이스이지만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허리와 왼손 엄지손가락 부상 속에 올 들어 열린 22개 LPGA 투어 대회중 10여차례 참가해 최종라운드까지 마친 대회는 단 5개에 불과했고 세계랭킹도 2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올림픽 직전 참가한 KLPGA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선 컷 탈락하는 치욕을 당했다. 본인조차 올림픽에 나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상황에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괴롭혔다. “욕심 부려 올림픽 티켓 날리지 말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한 박인비는 경기가 펼쳐진 나흘내내 신들린 샷을 날렸다. 수개월간 부상으로 기를 못 폈던 선수가 맞는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박인비는 남녀 통틀어 세계 골프사상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과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이뤄낸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와 함께 참가한 양희영, 김세영, 전인지 역시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여자골프가 최강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여자골프가 이렇듯 세계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여전히 찬밥신세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공무원 기강확립 도구로 이용되기 일쑤였고 골프접대를 받았다며 처벌받는 나라다.
올림픽 골프 마지막날 중계방송 시청률 합산 30.3%(지상파 4사)가 말해주듯 골프는 대중스포츠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아직도 골프 자체를 백안시하고 골프 치는 사람들은 부도덕한 사람으로 치부하는게 골프왕국의 현주소다.
이렇게 된데는 그린피가 비싼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개별소비세와 중과세 대상인 재산세, 취득세,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지만 결국은 골퍼에게 돌아간다.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다 보니 웬만한 사람들은 제돈 내고 치기가 부담스럽다. 또 국가지도자의 골프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한 몫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골프활성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2월엔 국무위원과의 티타임에서 골프활성화를 주문했고 지난 4월엔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풀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골프활성화 조치가 취해졌는지 소식이 없다.
대한민국처럼 세금 내 가며 운동하는 나라는 없다. 금메달리스트인 박인비를 비롯한 모든 골프선수들도 세금내고 골프를 친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들으면 참 희한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골프에 대한 이중적 태도, 정부가 앞장 서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116년만의 첫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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