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의식주다. 그 중에서도 우리 삶의 가장 큰 안식처인 집이 아닌가 한다. 바깥 생활이 아무리 즐겁다고 해도 내 집보다 더 따뜻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는 없다고 본다.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노랫말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산다. 나 또한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평생 동안 살 요량으로 결혼 4년 만에 단독주택을 장만했다. 단독주택에 살 때는 층간소음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시대의 변화로 남들 사는 아파트에 살아보겠다고 부푼 마음으로 아파트로 이주했다. 평지에 살던 습관 탓인지 이곳에서 한동안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어 뒤척이는 밤이 많았다. 애써 적응되는가 싶더니 아파트에 대한 선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위층 여자는 결벽증이라도 있는 듯 매일 유리창 너머로 이불을 너는가하면 시도 때도 없이 이불과 옷을 털어 댔다. 그 일 때문에 유리창을 열어놓지 못하고 참고 또 참으며 지냈다. 그건 그렇다하고 층간소음 때문에 겪는 고통은 고역이었다. 대여섯 살 남매가 밤늦도록 뛰는 것은 물론 쿵쾅거리고 난리다. 관리실에서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일은 삼가라는 방송을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어느 날 열 두 개의 이를 빼고 인플란트로 교체할 때다.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눈도 뜨지 못하고 말뿐만 아니라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때다. 긴긴 겨울밤 열시가 되도록 아이들은 여전히 소란이다. 보다 못한 딸이 인터폰으로 “환자가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하니 오히려 애 엄마는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소리소리 질러대며 아우성이다. 딸은 좋은 말로 마무리 짓고 수화기를 놨다. 곧이어 애 아빠가 인터폰에 대고 무시무시한 말로 쌍욕을 퍼부어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겁이 났다. 그 후 막무가내로 말하는 그들이 무서워 밖에 나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안타고 계단으로 오르내린 적도 많았다.

아파트생활이 편리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외부 요인으로 인해 심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가구가 벽 한 두 장을 맞대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무관심속에 산다. 극도의 개인주의로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이다 보니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심하다. 최근 층간소음의 갈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다툼과 주먹다짐이 오가는가하면 흉기를 휘두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극단적인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살벌한 이웃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극단의 개인주의와 남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 간에 서로 대화나 양보보다는 소통부재로 교류단절이 날로 늘고 있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이웃끼리 서로 소통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갖고 좋게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식이 바뀌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다보면 좋은 이웃사촌이 되리라 믿는다. 이웃 간에 소통의 자리였던 반상회 같은 모임이라도 또다시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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