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뒤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각자 먹은 음식값을 따로 계산하는 ‘더치페이’, 술자리를 오래 이어가지 않고 일찍 끝내는 ‘저녁이 있는 삶’, 허례허식을 줄인 ‘작은 결혼식’ 등 긍정적인 모습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업을 걱정하며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법 시행 뒤 첫 주말, 결혼식 풍경이 확 달라졌다. 김영란법 대상자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법 위반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결혼식장 접수대 앞에서 현금을 세는 하객 중 10만원이 넘는 돈을 축의금 봉투에 넣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식장 앞에서 하객을 맞는 신랑들은 덕담대신 ‘한 주만 당겨서 하지, 왜 법 시행 직후로 날을 잡았느냐’는 말을 인사로 듣는다.
농민이나 소상공인들도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축하 난과 꽃 선물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10만원 규제’에 조화 대신 조의금만 보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화훼 농가나 꽃 가게가 된서리를 맞았다. 전업과 폐업 얘기까지 나온다.
화훼업계의 어려움은 현실이 됐다. 평소 같으면 화환으로 가득 차 있을 결혼식장이 김영란법 이후 부쩍 줄었다.
화환을 찾는 곳이 줄자 업자들은 생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화원을 운영하는 업자들은 ‘농수산업계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빼야한다. 경조사비에 왜 화환가격을 포함시켰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최근 음성군 대소·삼성면에서 난을 재배하는 농가 5곳 중 2곳이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6개월 사이 문을 닫았다. 이들 농가는 내년부터 다른 작물을 키우기로 했다.
통상 관상용 난은 재배량의 90% 이상이 관공서나 기업의 승진·인사 선물용으로 팔려 나간다. 김영란법에서도 사교나 의례 목적으로 5만원 이하의 선물 제공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선물 자체를 기피하면서 화훼농가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마진율을 줄여 5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일명 ‘김영란 화분’을 내놓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음성화훼유통센터는 법 시행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돼 거래량이 6개월 전보다 40%가량 떨어졌다. 저렴한 가격의 꽃 소비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리운전 업계도 울상이다. 법 시행으로 술집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곳에서 나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골프장 손님이 줄면서 캐디들도 수입이 주는 등 김영란법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김영란법 시행으로 피해를 보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김영란법은 청렴 국가 건설을 위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한 소비 둔화가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침체한 지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법 시행으로 선물 관행의 거품이 걷히면서 직접 손실이 예상되는 화훼농가와 어민, 축산·과수 농가의 판로 확대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장기화한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이 법의 유탄을 맞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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