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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젊은 세대들의 대화와 세대간 대화
한·중·일 젊은 세대들의 대화와 세대간 대화
  • 동양일보
  • 승인 2016.10.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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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회의Ⅱ -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
 
 

(동양일보)동양일보 부설 동양포럼 운영위원회는 지난 1~3일 3일 동안 청주시 우암동 충북예총 따비홀에서 한·중·일 학자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양포럼-한·중·일 회의 Ⅱ’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젊은 지식인들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는 주제 아래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의 장을 펼쳤다. 특히 이틀에 걸쳐 진행된 ‘한·중·일 젊은 세대의 대화’와 이어서 펼쳐진 ‘세대간 대화’를 함께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주>

<첫 번째 발제와 관련대화>
▷미아자키 후미히코 지바대 특임연구원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동했던 생명의 서열화와 거기서 나온 온갖 반생명적 사고와 실천의 문제를 제기 하고자 한다. 생명의 서열화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지난해 초 60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코마츠 히로시(小松裕) 선생(당시 쿠마모토(熊本)대학 교수)이다. 그는 다나까 쇼조(田中正造) 연구의 제1인자였고 교토포럼과 아주 많은 인연이 있었다. 다나카 쇼조는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근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해문제와 싸운 정치가이자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일신(一身)을 공공(公共)에 바친다’는 선언대로 ‘공공하는 인간’의 대표적인 일본인으로서 교토포럼에서도 한국의 탁월한 사상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함석헌과 사상적 유사성이 강조돼 심도있게 논의된 바 있다. 코마츠 히로시 교수의 ‘생명의 서열화’라는 문제제기는 메이지시대 중기에서 1920년대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묘사한 ‘생명과 제국일본(동경: 소학관, 2009)’에 상세하게 진술돼 있다. 이 책의 ‘시작하며’에서 생명이 근대 국가권력의 가장 본질에 관련되는 존재로 위치지어지고, 국가권력은 신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까지 지배하고 관리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모든 정치는 ‘생명을 둘러싼 정치’에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1894년의 청일전쟁에서 1920년대에 이 생명을 둘러싼 정치가 명확하게 출현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생명’의 서열화이다. 사람들의 생명에 서열을 매겨 한쪽은 중시 다른 한쪽은 무시 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명들이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마침내 말살당했다. 식민지지배란 다름아닌 ‘생명’의 서열화였다. 조선이나 대만에 한정되지 않고 제국일본이 지배하려고 한 지역에서는 항상 일본인은 서열의 최고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었던 것이 사람들의 ‘문명’의식이었다고 코마츠 선생은 지적한다. ‘문명’이란 서양화를 말하고 ‘문명’과 ‘야만’의 싸움으로 규정한 청·일전쟁에서의 승리에 의해 확립된 이 의식구조는 그 후 일본 이외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야만국으로 간주하고, 제국일본에 의해 문명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사명감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전전(戰前)의 제국일본에 의해 행해진 수많은 부도덕과 함께 그 배후에 이러한 의식이 있었음을 재확인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전전(戰前)의 ‘생명의 서열화’가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의 일본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유한 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격차사회의 출현과 확대가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생명의 서열화 문제는 커다란 문제로 남아있다고 생각된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동아시아 각국의 생명 서열화 문제를 여러분들 앞에 다시금 제기한다.” 
▷선지수 도호쿠대 박사후기생 “지난 9월에 센다이에서 동양포럼과 비슷한 모임을 가졌다. 그때의 내용을 소개하고 느꼈던 점을 말씀드리겠다. 센다이 포럼에서 제기됐던 것은 생명과 실천주체의 문제였다. 센다이에서도 학생들만의 대화를 가졌다. 학생들은 주로 리더십의 문제를 논의했다. 특히 리더십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 배경이 있다. 동일본대참사 이후에 국가에서 리딩 대학원이라는 리더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을 신설했다. 중요 대학의 우수한 대학원생을 뽑아서 200명정도를 장학금 주면서 리더로 양성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말하는 리더라는 것은 위에서 이끌어가는 엘리트라는 이미지다. 결국 국가의 필요와 의지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교육은 그것이 어떤 수준의 교육이든 간에 위에서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는 고정관념이었다. 솔직히 비애와 좌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발제자의 한분으로 참석하셨던 김태창 선생님이 21세기의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는 남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리더보다는 오히려 맨 뒤에서 낙오자, 탈락자가 없는 지를 살피고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버려진 일들을 제대로 바로잡는 ‘후방봉사자=섬기는자’의 마음가짐이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일본말로는 ‘싱가리’ 라고 하는데 한글말로는 적당한 것이 없다면서 영어로 표현하면 리더십에 대비해서 ‘서번트십’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박맹수 교수님이 동학혁명은 철저하게 민중주도적인 개혁이요, 개벽이요, 다시 개벽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의 엘리트 적 지도자들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했고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민중생명운동을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진압했고, 그 주요 인물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위 윗자리에 앉아서 좋은 말만 골라서 자기 이익과 권한만 늘리려고 하는데 열중한 나머지 백성의 생명과 생활과 생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그들에게 무슨 기대를 한단 말인가? 갖가지 리더십론에 위화감만 느낄 따름이다.”
▷장귀룡 영남대 석사과정생 “싱가리에 관한 이야기가 참 감명 깊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리더십이니 스포츠맨십이니 하는 말들을 만들어서 어떤 모델이나 표준으로 삼고 거기에 맞추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름 아닌 거기서 헬코리아 같은 절망적인 감정이 솟구치는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자기무력감이 생리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모델이나 표준을 제시해서 그것에 대한 공감과 공유를 장려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런 것들을 없애고 모델부재나 표준결여를 대전제로 하고 아주 새로운 길을 각자가 나름대로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선지수 박사후기생 “리더십론이 너무 많으니까 그것에 대한 대안이 없을까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싱가리론이 라는 것이 일본에서도 거론되고, 김태창 선생님도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의 소감을 피력했다. 각자가 다양하게 자기 생각대로 살면 되지 않느냐 라는 말인 것 같은데 나는 어떤 롤모델 같은 것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임홍령 교토대 수사과정 “‘생명의 서열화’와 ‘섬기는 자의 마음가짐=싱가리=서번트십’이라는 문제제기에 공감한다. 아까 장귀룡씨가 모델을 만들지 말고 그냥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롤모델이 없는 사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한국에도 생명의 서열화라는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을 보면 대기업이 제일 위에 있고 중소기업은 그 아래라는 등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고 거기서 생명·생활·생업의 가치서열도 매겨진다. 그런 현실에서 ‘서번트십’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아쉽다. 맨 뒤에서 뒤치다꺼리를 제대로 하는 후방 봉사자가 맨 앞에서 사람들을 계도 하는 소위 지도자라는 인간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여는데 더 공헌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도키마사 가즈기 교토대 박사후기과정생 “나는 여기서 생명의 연약함을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명은 연약하기 때문에 아주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퇴계 선생의 ‘경(敬)’사상은 생명존중과 생명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미나토모토 히로유키 교토대 학부생 “사드문제가 제기되면서 중국 안에서 한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에서 한류문화의 열기가 식은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정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대중적 인기는 쉽게 변하는가 보다. 그래서 문화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중심이 되어감에 따라 중국 중심의 서열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 한·중·일의 수평적 연대의 필요성이 절감된다.”
▷왕저 중앙일보 중국문제연구원 “나 스스로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다. 젊은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 중국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중국의 현실이 한국이랑 일본이랑 아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경제발전이 굉장히 빠르고 그래서 기회도 많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 사람들이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난 단어가 공감이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장래불안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한류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공감의 문제다. 왜냐하면 한류가 중국과 일본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도 한국드라마에서 많은 공감을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중국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한류는 지속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
▷한지연 교토대 박사후기과정생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여서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지 생각을 해봤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서 라는 말 밖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는 뭔가 부족하고 이렇게 멈춰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는 것이고 걱정스런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설레임을 느낄 수도 있었다.     ☞13면에 계속

해결책을 찾는 일이 쉽지도 않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본다.” 

<두 번째 문제제기와 관련대화>
▷장지영 원광대 요가원 원장 “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선 서양 근대적 사유의 질곡에서 벗어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림철학’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명이 자본의 문명이 아니라 ‘살림’의 문명이 돼야 한다. ‘어떻게 우주적 생명력을 회복할 것인가’가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그것에 대한 고민으로 요가를 선택했고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인은 신체적 생명에 대해 너무 집착하고 있다. 이런 집착으로 힐링과 웰빙 같은 단어가 유행하고 마침내 힐링과 웰빙을 합친 ‘힐빙’이라는 단어까지 생기게 됐다. 건강이 가장 큰 화두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이나 등산 또는 여러 가지 운동과 먹는 것과 바르는 것에 신경을 쓴다. 또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무한정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24시간 편의점에 있는 불빛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인이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활기를 찾기는 어렵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분주한 것 뿐이다. 현대인은 그저 욕망에 쫓기고 있다. 그래서 욕망을 추구하는 분주한 모습이 마치 활기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건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건강이 자본으로 둔갑해서 매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건강산업이 성하고 건강기업이 돈을 벌지만 막상 참건강은 쇠퇴일로를 달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생명력은 생기(生氣)다. 분주하지 않아도 생기는 얼마든지 넘칠 수 있다. 생기는 활동이 아니라 호흡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코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숨이라고 생각하는 근대과학의 사유는 너무 단순하다. 동양사상에서 숨은 우주적인 기운을 마시고 내쉬는 것이다.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인도철학에서 보면 우주적인 기운과 그것의 작동원리를 원기로 볼 수 있는 데 우주적인 숨을 브라흐만이라고 한다. 개체들의 호흡은 브라흐만을 공유하는 것이다. 호흡은 신체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주생명의 동태에 참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목숨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명을 인체 차원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숨을 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젊어지려고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 그저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주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회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호흡이 고르게 되면 마음이 고르게 되고 생기가 생기고 욕망이나 집착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숨이 고르게 되면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숨은 수련과 관련이 있다. 호흡은 마인드컨트롤과도 관계가 있다. 현대인은 수련없는 운동만 반복하고 있다.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고 살을 빼려는데 집착하고 있다. 여기에 호흡이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퇴계 선생도, 유영모 선생도 호흡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숨을 쉰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을 자각하는 것이다.”
▷한지연 교토대 박사과정 “5년 전에 폐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회복하는 과정에서 호흡의 중요성을 실지로 체험한 적이 있다. 호흡은 단순히 숨을 쉬는 행위가 아니라 더 나아가 우주생명을 자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보름 한·중·일 시민운동가 “일반적으로 생명과 무생명을 나누는 것은 대사 작용의 유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생명은 존재라기보다 호흡으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반문이 생겼다”
▷김세진 군사학연구가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에 대해 나이 드신 분들은 쉽게 체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 나부터가 우주생명을 실감하기 어렵다.” 
▷장지영 요가원 원장 “같은 의문을 나도 하고 있다. 우주생명이라면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개체생명으로서의 나 스스로의 생명이 위급한 처지에 놓였을 때 뒷받침 해주는 보다 큰 생명력의 실재를 실감해서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 
▷장귀룡 영남대 석사과정 “동아시아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의 큰 맥이 도교와 불교, 유교라고 한다면 호흡의 문제는 불교와 가장 연관이 크다고 생각된다. 타자와 관계될 수밖에 없다는 호흡은 나를 관찰하고 나를 둘러싼 우주를 관찰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결국에는 불교의 연기사상에서 말해지듯이 모든 것은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다는 상호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결국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세상 만물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는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임홍령 교토대학 수사과정 “나는 호흡이 생명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호흡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호흡하는 것 자체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근본이 된다. 호흡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고 호흡기 등 인공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다. 때문에 호흡을 통해 우리는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적인 차원의 호흡은 소통이다. 소통은 호흡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야만 가능하다. 호흡이 개체생명이 하는 것이라면 소통은 무수한 개체생명들의 공통 호흡인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호흡을 공공적인 호흡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공공적 차원의 호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징 교토대학 박사과정 “김태창 선생님이 교토대학에서 생명과 호흡에 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6년 전에 일본에 유학 와서 건강이 매우 안 좋았는데 심할 때는 호흡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적이 있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호흡이라는 것은 생명의 핵심으로써 장 원장님 말씀처럼 인도철학과 관계가 깊다. 중국의 도교에서도 장수하기 위해 호흡을 중요하게 여긴다. 맹자는 아침이면 밤기운을 기르는 것을 중요하다고 했다. 거기에도 호흡에 관한 것이 체계적으로 문장이나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 명시대 말기에 왕선상이 생명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번 포럼의 주제와 연관 지어 보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는 우주 생명을 자각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토키마사 가즈기 교토대학 박사후기과정 “현대인은 활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는 활기가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호흡은 소통이다’라는 말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듯하다. 현대사회를 생각할 때 물건이 넘쳐나고 활기가 보이지만 거꾸로 이런 것들이 우주 생명을 멀어지게 하는 모순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토 타쿠마 한양대 일문과 강사 “우리가 호흡을 하려고 할 때 환경이나 상황도 중요할 것 같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고 할 때 공기가 오염돼 있어서 호흡조차하기 어려워서 마스크를 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산소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자본주의 문제다. 오염된 공기도 호흡해야 하는가?”
▷히로다니 마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과정 “생명이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듯 호흡까지도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지나 않은지.”
▷장지영 원광대 요가원 원장 “서민들은 유기농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돈 없는 사회에서 살고싶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인 환경을 꿈꾸고 있다. 자본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돈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자본이냐는 것이 문제다. ‘숨’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남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바탕이 돼야 한다.” 

<한·중·일 세대간 대화 >
▷이동건 국제 퇴계학 연구소 이사장 “이말은 꼭 해두고 싶다. 김태창 교수님이 이번 포럼에 특히 ‘젊은 세대의 대화’의 시간을 마련한 것은 기성세대의 자기 반성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평상시에는 늘 기성세대가 말하고 젊은 세대는 듣기만 했는데 이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경청하는 수련을 쌓는 것도 필요하지 않느냐라고 권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대화를 들어보고 새삼 세대간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고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장욱 미술작가 “동아시아 세 나라의 여러 지식인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낯설게 바라보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체득되지 못한 서로의 문화에 대한 낯섦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름 붙여진 문화로서 이미 받아들인 나 자신에 대한 낯섦일 수도 있겠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모든 문명은 야만의 기록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베냐민의 말을 인용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또 노자는 일찍부터 도덕경에서 이 세상이 꼬임으로 이루어진 오묘한 상태일 뿐 어느 특정한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맥박의 굴곡과 같이 크고 작은 사건을 도구적으로 소비하면서 이름표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스스로 사유하기를 거듭하며 서로의 철학을 거울삼아 붙여진 이름표에 의해 한 세대에 머무는 것을 탈피하고 각자의 좁은 당사자성에 취하는 것을 깨우며,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진 동아시아의 당사자로서 거듭나게끔 서로가 서로에게 산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준 높은 ‘낯설게 바라보기’를 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동아시아의 미래를 딛고 갈 한 사람의 젊은이로서 뼈 있는 조언을 간곡히 청하고자 한다. 나는 작가로서 자신이 내면의 것을 꺼내서 브랜드화 하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오늘은 개천절이고 여러 선생님들을 통해 ‘개천’이라는 개념에 대해 젊은이로서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개념에 대해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세계에 소개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이것에 대해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젊은 사람의 감각이 하나의 힌트로써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선생님들과 논의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김태창 박사님은 한국은 ‘논쟁적인 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논쟁적 기질만 남아 있을 뿐 대체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 예로 ‘한국의 임대아파트’에 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자녀의 부모가 맞은편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와 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결국 헬코리아라고 외치면서 그것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천해보려는 젊은이는 없는 것 같다.”
▷텐 베니아민 교토대학 대학원생 “나는 러시아에서 온 한국계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이번 동양포럼에 있어서 러시아의 위치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제3자라는 입장이기도 하고 당사자라는 인식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나 나름의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다. 나자신의 문제의식은 먼저 우주생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너무 긍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주생명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 소박한 의문이 생겼다. 예를 들어서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이 우주생명이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 어떤 것을 떠올리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우주생명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국가가 이용하기 좋은 논의의 소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를 봤을 때 국체사상 또는 야스쿠니를 들 수 있다. 일본은 ‘개체생명이 다 한 후에는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죽음 후에 더 큰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러시아의 톨스토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그는 후기로 들어갈수록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주생명이라는 것을 자주 거론했다. 그리고 그 결과 가족이나 자신의 개체생명을 버리고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소박하게 죽어 가는데 지상낙원으로 가서 행방불명이 돼서 죽은 것은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다. 따라서 우주생명을 자각한 사람이 타자와의 관련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그것에 대해 우주생명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은가? 오늘은 개천절이다.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라 실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것을 실증할 필요는 없지만 이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텐 베니아민씨의 문제제기에 응답하겠다. 우리는 ‘단군신화’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는 어느 시기에 어떤 세력들이 우리 겨레의 유구한 역사를 말살하고 부정하기 위하여 단군 조선의 건국신화를 단군신화라고 날조한 역사왜곡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조인 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단군조선의 건국신화는 있을 수 있지만 단군신화는 있을 수 없다. 단군조선은 47대에 걸쳐 2090년간 실재한 국가다. 올해가 단군기원 4349년이 된다. 단군조선의 건국신화를 단군신화라고 우겨대서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고 부정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극도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단군신화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무엇이나 국가가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길은 없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우주생명이 아니라 천황의 큰 생명을 받들기 위해서 개개인의 작은 생명을 바치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아서 그것이 국가를 위해서 받쳐졌을 때 그 영혼이 야스쿠니에 안장되고 국민의 추앙을 받게 된다는 이데올로기 조작의 예를 가지고 민중이 각각 자기속에 ‘하늘(天)=우주생명’을 자각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자는 것과 혼돈한다는 것은 우주생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이야기도 개인적인 예외사항이라고 본다. ‘천=우주생명’을 내안에 모시고 있다는 확신을 공유했던 민중이 주체가 돼 일본과 중국의 한반도 침략에 목숨 걸고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서 자타간에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동학혁명의 역사에서 실감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신비주의와는 아주 다른 한 백성의 역사적 집합체험에서 나온 현실의식이다. 그래서 나는 개천(開天)의 ‘천=하늘=우주생명’의 자각이 온갖관계 형성의 새로운 차원이라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대화를 해보자.”
    <정리/조아라, 김재옥, 신홍경, 박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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